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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용사의 복수담~실망했습니다, 용사 그만두고 전 마왕하고 파티 짜겠습니다.'의 번역입니다.
원본 링크는 여기
제 5장『성도』
제 7화 『비웃는 어리석은 자, 폭로하는 성녀』
——이건 먼 날의 기억.
그 소년은 성도 슈멜트 동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겁쟁이에, 머뭇거리기만 하는 아이였다.
부모님한테서 「이 애한테는 용기가 부족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 소년은 겁쟁이였다.
마을에는 활발한 아이가 많았는데, 그래서 소년은 아이들한테 놀림 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
소년은 이리저리 뛰어 다니거나, 나무에 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왜 무섭냐고 물어봐도 소년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서웠던 것이다.
7살이 됐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은 꿈을 얘기하게 됐다.
『모험가가 되고 싶어』
『아마츠처럼 멋진 영웅이 되고 싶어』
그들이 한창 꿈을 얘기하고 있을 때, 소년은 무엇 하나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했다.
모험가가 돼서 싸우는 건 무섭다.
영웅이 되다니, 자신이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겁쟁이 소년은 꿈을 찾지 못하고 그저 그루터기에 걸터 앉아 한적한 풍경을 보는 일상을 보냈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루터기에 앉아있던 소년한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였다.
“풍경을 보고 있어.”
“흐음~. 즐거워?”
“……글쎄. 잘 모르겠어.”
“그럼 내 얘기 좀 들어봐.” 라더니 소녀는 소년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말수 적은 소년은 신경 쓰지 않고 소녀는 일방적으로 말을 걸었다.
부모가 엄격하다는 것, 성서를 매일 읽게 한다는 것, 그런 불평이다.
소녀의 얘기를 듣고 소년은 뭔가 생각나는 말을 했다.
소녀는 얘기를 마치더니 만족한 건가, 떠나갔다.
다음날도 소녀는 왔다.
소년의 옆에 앉아 이것저것 얘기를 시작했다.
소년은 또 생각난 무언가를 입에 담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소년은 왔다.
“너랑 놀아도 재미 없어.” 라며 아무도 말을 걸지 않던 소년한테 소녀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말을 걸어 주었다.
“……있지, 왜 나 같은 거랑 얘기해 주는 거야?”
어느 날, 소년은 물어봤다.
즐겁지도 않을 텐데, 어째서 소녀가 자신과 대화해 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째서……냐니, 네가 얘기를 잘 들어줘서 그런 게 아닐까?”
“뭐……?”
당혹스러워하는 소년한테 소녀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마을의 다른 애들은 달리기나, 나무를 타는 걸 좋아하잖아? 얘기하고 싶어도 들어주질 않는단 말이야.”
“……나는 그냥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야.”
“그래도 너는 내 얘기를 듣고 제대로 대답해 주잖아?”
“………….”
‘”게다가, 너랑 얘기하고 있으면 뭔가 차분해지거든.”
그래서 너랑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
안 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한테 소년은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차분해진다.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소년도 소녀와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무척이나 차분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이름.”
“응?”
“아직, 이름 못 들었어.”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네 이름 안 물어봤었네!”
이상해라, 하고 소녀는 웃더니 대답했다.
“나는 키리에. 키리에 우르슬라 에이벨른이라고 해.”
소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년은 말했다.
“……나는 레오 윌리엄 디스프렌더.”
이건 먼 날의 기억.
어느 소년과 소녀의 기억에 새겨진, 만남.
◆
“……하지만 정말로 어이가 없군.”
개인실에서 손님을 기다리면서 마르크스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날 밤, 일부러 저택으로 숨어 들어 왔던 류자스.
죠지와 릴리를 죽인 상대의 얘기를 그 남자한테서 들었을 댄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어이가 없는 정도가 있다.
영웅 아마츠의 망령과 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마족.
그 두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려면 좀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소한 만나게 되면 두 손발이 절단될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설마 다치지도 않고 처리할 수 있었을 줄이야.
“그 멍청한 여자들을 일부러 구해줄 줄이야. 썩어 빠졌어도 「영웅」이라 이건가?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가령 그게 진짜 아마츠였더라면 30년 전에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도 아직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건 어지간한 멍청이다.
“……그나저나, 함정을 설치하기 전에 손발이 잘려나갈 것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두 사람은 마르크스한테 검을 휘두르기 전에 발을 멈췄다.
그 틈을 찔러 바닥을 부쉈으나, 조금 이해가 안 간다.
둘 다 기능으로 봤을 땐 마르크스를 웃돌고 있는 상대였다.
정면으로 싸우게 되면 대처할 수 없었을 터다.
맨 처음부터 검에 베여 약해진 척을 한 후, 그 틈을 찔러 바닥을 무너트릴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느낄 정도의 차이는 없었지만……아니면, 나를 경계하고 있던 건가?”
아예 손발을 절단할 수 있을 거리로 들어와 줬더라면 좀 더 확실하게 그 두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바닥을 무너트리면서 류자스한테서 받았던 『대 마족용』 마력 부여품(매직 아이템)을 몇 개 버리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마력 부여품은 설치하지 않고 갖고 있었으면 됐을 것을.”
그 『대 마족용』으로 만들어진 마력 부여품(매직 아이템)이 없더라도 마르크스한테는 비장의 수단이 있었다.
「영웅 아마츠」와 마족의 허를 찔러 함정에 빠트릴 정도의 비장의 수단이.
“흥……뭐 됐어.”
「영웅 아마츠」의 망령은 힘을 잃고 있었다.
높은 기량을 갖고 있긴 했지만 고작해야 그 정도다.
마족 여자도 류자스의 결계로 막아낼 수 있는 정도라면 별다른 실력은 아니었으리라.
구멍 안에는 그 두 사람을 처리하기 위한 다중 결계와, 몇 가지 트랩이 설치되어 있다.
결계를 포함한 몇 개의 함정은 류자스가 준비한 것이지만 그 효과는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
지금쯤 그 두 사람은 함정에 잡아 먹혀 있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일이 끝난 후 찬찬히 뒷처리를 하면 된다.
“하, 결국 너무 경계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 정도의 상대한테 꽤나 수고를 들였군 그래.”
구멍 속으로 떨어진 그 두 사람을 떠올리고 마르크스가 입술을 일그러트린 타이밍이었다.
『——꽤나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데?』
방 안에 들어 본 적 있는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르크스는 자세를 취했다.
『너, 그 녀석들을 너무 얕보고 있다고』
“……류자스 공인가.”
방 안에 울려 퍼지는 류자스의 목소리.
그 음원이 자신의 허리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르크스가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
마르크스가 사용하고 있는 검 손잡이——그곳에 어느새 작은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게 보였다.
“이건…….”
『멍청하긴. 목소리와 마력을 전달하는 마력 부여품(매직 아이템)이다』
어느새.
그런 얼빠진 질문을 하려고 하다가 마르크스는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당연히 맨 처음 접촉했던 그 밤이다.
류자스는 경계하는 마르크스한테 들키지 않고 마력 부여품(매직 아이템)을 부착시켰다.
마르크스가 오늘 이 순간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소리는 사용할 때까지 전혀 마력을 뿜지 않는 온 오프가 가능한 타입의 물건이리라.
“………….”
『하, 화가 난 거냐? 오히려 감사해야 할 텐데. 내가 마력을 날리지 않았더라면, 너, 두 손발이 잘렸을걸?』
“…………오히려 그렇게 될 걸 예상하고 대응책을 짜고 있었다만.”
『그랬군. 그거 방해해 버린 건가?』
억지를 비웃는 듯한 음색을 듣고 마르크스의 이마에 혈관이 부풀어 오른다.
분노에 몸을 맡겨 허리춤에 있던 검에 붙어 있던 반지에 손을 뻗었다.
『이봐, 망가트릴 생각이냐? 아까운 짓을 하는군』
“멋대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하는군. 다른 마력 부여품도 찾아내는 대로 파괴하겠네.”
우둑 하는 소리를 내면서 마르크스는 반지를 박살냈다.
반지에서 들리고 있던 류자스의 목소리에 노이즈가 섞이기 시작한다.
『뭐 됐어. 여기까지 도와줬으니 말이야. 실수하지 말라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류자스의 목소리는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됐다.
반지를 바닥에 내던지고 분노에 몸을 맡겨 신발굽으로 반지를 짓밟았다.
“「대마도」니 뭔지는 모르겠다만……우쭐대고 말이야. 그딴 말 할 필요도 없다고.”
그 구멍 속의 함정 중 절반을 준비한 건 저 남자다.
그 정도의 효과가 있는데 죽일 수 없을 거라고 여기는 건가?
“……쳇.”
아니면 그 정도로 자신을 깔보고 있는 것인가.
뭐가 됐건 그 정도의 두 사람으로선 함정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찌 됐건, 내. 반.신.이 가득 들어가 있으니 말이야.”
방 안을 둘러보며 류자스가 뭔가 설치해 둔 건 없는지 조사한다.
아무래도 그 반지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삐그덕, 하고 마르크스가 걸터앉은 의자가 삐걱였다.
눈을 감고 의식을 바꿨다.
생각하는 건 침입자도, 류자스도 아니다.
——키리에 우르슬라 에이벨른.
처음 봤을 때부터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교단에 있는 여자는 모두 다 치장을 하고 있지만, 벗으면 보잘 것 없는 몸을 가진 자들뿐이다.
하지만 키리에는 다르다.
꾸미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용모에, 잘 다부져진 체형.
맨 처음부터 키리에는 최고의 여자라고, 마르크스는 확신하고 있었다.
“장난감으로 삼을 거라면 더러운 아인종으로도 충분하지만……. 후후, 역시 정말로 즐기려면 인간 여자지.”
지금까지 얻고 싶은 건 뭐든지 얻어왔다.
상관이었던 죠지와 릴리를 이용해서 돈과 지위를 손에 넣었다.
얻은 돈과 지위를 사용해 부하를, 희롱할 여자를 그리고 힘마저 얻었다.
그건 그 여자도 예외는 아니다.
키리에는 어떻게든 얻고 싶다.
몸도 중요하지만, 성창 마술을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필요 없어지만 먹.어. 버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아아……디스프렌더 군. 정말로 미안하군.”
레오가 키리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 채고 있다.
눈치 채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키리에가 갖고 싶어졌다.
“꼬맹이 주제에 부대장 같은 자리까지 올라온 자네가 나쁜 거라네.”
자신이 얼마나 고생해서 이 지위까지 온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그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가 자신의 바로 밑에 있다니,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큭큭.”
레오가 존경하고 있던 전 대장의 말로를 알게 된다면 그 젊은이는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상상하기만 해도 가슴이 술렁였다.
“……흥.”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시간이 다가왔다.
심야를 넘기기 직전 정도.
“그 두 사람이 나올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군. 역시 내 반신한테 먹힌 건가.”
그렇다면 이쪽은 이쪽대로 즐기도록 하자.
그 후로 몇 분 후, 저택에 손님이 왔다.
문을 여니 간소한 옷으로 갈아 입은 키리에가 서 있었다.
“잘 와 줬네, 키리에 군.”
현관 앞에서 마르크스가 쾌활하게 키리에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키리에는 고개를 숙이기만 하고, 소리도 살짝 떨리고 있다.
겁을 먹고 있다는 게 한 눈에 봐도 분명했다.
“자, 여기 있는 것도 뭐하지 않나. 내 방에서 얘기하도록 하지.”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걸 참으며 마르크스는 키리에를 자신의 침실로 안내했다.
고개를 숙인 채로 키리에는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멍청한 여자로군.’
마르크스의 개인적인 견해로서 키리에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머리 나쁜 여자가 아니다.
그냥 바보라면 교단에서 펼쳐지는 권모술수에 휩쓸려 지금의 지위에 서 있을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레오가 엮이면 얘기는 바뀐다.
교단에서 펼쳐지는 권모술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여자는 『권력』이라는 것의 무시무시함을 알고 이는 것이다.
기사단에서도 권력이나 연줄이라는 건 깊이 연관되어 있다.
교단, 기사단, 모두 다 심층부와 연관이 있는 마르크스가 진심으로 손을 쓰면 레오의 출세를 막을 수 있다.
나날이 전투가 펼쳐지는 지방으로 보내서 전사하도록 꾸미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실제론 그 나이에 지금 지위까지 올라온 디스프렌더를 떨어트리려면 상당한 무리를 해야만 하지만 말이야.’
“………….”
키리에는 레오의 미래가 닫히는 걸 두려워 해 마르크스와의 혼약을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레오의 걸림돌이 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꼬시기가 더 쉬웠지, 키리에 구운.’
마르크스는 내심 비웃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그렇기에,
“……윽…….”
걸어가던 도중 귀를 억누르며 숨을 삼키는 키리에를 눈치 챌 수 없었다.
◆
“지금 홍차를 내도록 하겠네. 거기 앉아주게.”
“…………네.”
키리에를 의자에 앉히고 마르크스는 홍차를 가지러 갔다.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는 홍차 속에 품에서 꺼낸 갈색 분말을 슬슬 뿌린다.
분말은 금방 녹아 들어 홍차 색에 섞여 보이지 않게 됐다.
사용이 금지된 어느 약물이 포함된 가루다.
홍차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양만 마셔도 술에 취한 것처럼 의식이 몽롱해진다.
분말 효과가 다 떨어졌을 즈음엔 키리에는 『홍차』가 마시고 싶어져서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키리에는 더 이상 마르크스한테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미안하군, 기다리게 했네.”
홍차를 들고 마르크스가 방으로 돌아오자 키리에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긴장해서 그런 건지, 그 표정은 새파랬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네. 자, 이 홍차를 마시게.”
그런 긴장도 홍차를 마시면 금방 사라질 거라며, 키리에한테 찻잔을 건네려고 했을 때였다.
“……당신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요……?”
키리에는 마르크스를 노려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험악한 표정을 보고 마르크스의 마음속에 살짝 동요가 생겨났다.
“……응? 키리에 군, 어떻게 된 건가. 일단, 진정하고…….”
“비명이……. 비명이, 들려요.”
“……뭐라고?”
귀를 억누르면서 키리에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저택에 들어오고 나서 계속 수많은 여자들의 비명이 들려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겐가?”
“감옥……약……, 이제 싫어, 살려줘……라면서.”
키리에의 말을 듣고 이번에야말로 마르크스는 얼어붙었다.
비명 따위, 마르크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귀가 좋더라도 지하에서 나는 소리가 여기서 들릴 리가 없는 것이다.
‘설령 마술을 쓰더라도, 들릴 턱이……!’
마술이라는 단어에 마르크스는 눈을 치켜 떴다.
이 여자가 사용하는 마술의 이름은 「성창 마술」
신(멜트)의 기적을 현대에 재현시킨다고 하는 독특한 마술인 것이다.
‘설마, ——「성청(聖聴) ……인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성광신」 멜트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다고.
그 기적을 사람들은 「성청」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걸 이 여자가 쓸 수 있다고 한다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키리에 군. 자네는 지친 거네. 자, 이 홍차를 마시고 일단 진정——.”
멋드러진 미소를 지으며 키리에한테 홍차를 내민다.
이것만 마시게 하면 「성청」이 있든 상관없다.
다소 강제로라도 이걸 마시게 하면——,
“——윽!”
파직 하고 작은 전기가 내달리는 듯한 감각이 마르크스의 손에 느껴진다.
찻잔이 튕겨 나가고 소리를 내며 박살났다.
“……홍차 안에 뭔가를 넣은 거군요.”
“……이건.”
“비명을 듣고 나서부터 몸에 결계를 치고 있던 거에요. ……부정한 것들로부터 몸을 지키는 결계를.”
카펫에 스며드는 홍차를 흘끗 쳐다 본 후, 키리에가 마르크스를 노려봤다.
“당신은……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요……?”
키리에의 두 눈이 정면으로 마르크스를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 보여줬던 여자의 표정이 아니다.
악마를 규탄하는 성직자의 표정이다.
“설마……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숨기고 있던 건 아니에요. 비명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성가신 능력이군, 하고 눈을 가늘게 뜨는 마르크스.
키리에는 사나운 표정을 지은 채로 마르크스를 노려보고 있다.
“……부정, 하지 않으시는군요.”
키리에의 말에 마르크스는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 후로 툭툭툭 하고 책상을 손가락으로 세 번 두드렸다.
“부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어째서인가요?”
“당연하지 않나.”
텅, 하는 소리를 내며 마르크스의 신호에 반응한 부하가 방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자네가, 여기서 죽기 때문이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부하를 대기시켜 놨었는데, 설마 키리에한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제대로 되는 일이 전혀 없다며 마르크스는 탄식했다.
“죽여라.”
“괜찮으시겠습니까?”
“능욕할 수 없는 건 안타깝다만, 살려 두면 어떤 기적을 일으킬지 모르니까 말이다. 목을 베어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라.”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확실하게 죽인 후, 시체를 먹어치우도록 하자.
“……!”
부하가 검을 뽑아 들고 키리에한테 휘두른다.
훈련된 기사의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하고 키리에의 목이 절단된다——,
“——「신의 성염을 여기에(안셈 인시네플레임)」
그렇게 확신하고 있던 마르크스의 시야에 하얀 화염이 가득 채워졌다.
순식간에 마르크스가 뒤로 물러난 직후, 화염에 휩싸인 부하가 절규한다.
이리저리 땅을 구르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상급 마술을 웃돌 정도로 강대한 마술을 키리에는 단 한 마디로 행사해 보였다.
하얀 화염 속, 실로 묶은 남색 머리칼을 나부끼면서 키리에는 조용히 서 있다.
보통이 아닌 열랑——인데도 불구하고 불에 탄 부하의 몸에 화상은 없다.
“멋지군.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성창 마술」인가……!”
“저항하지 않으시면 이 이상 위해는 가하지 않겠어요. ……마르크스 씨, 뭘 하고 계신 건지 저한테 가르쳐 주지 않으시겠어요? 이 이상, 죄를 저지르는 건————.”
“그 힘은 내가 써야 할 힘이다!”
기적의 재현을 눈앞에 두고도 마르크스가 격분한다.
검을 뽑고 달려드는 마르크스한테 키리에는 말없이 팔을 내리쳤다.
가구를 불태우지 않고 그저 마르크스만을 노리고 하얀 화염이 분류한다.
“그 위력은 인정하겠다만——.”
“……!”
훈련된 기사가 손쓸 방도도 없이 휩싸인 하얀 화염.
마르크스는 그걸 크게 몸을 뒤로 젖힘으로써 회피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유연함에 키리에는 한 순간 숨을 삼켰지만, 곧장 다음 공격을 이행했다.
키리에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해 하얀 화염으로 만들어진 칼날이 마르크스한테 달려들었지만——,
“——그걸 쓰고 있는 게, 너 같은 꼬맹이여선 무리다!”
마르크스는 회전해서 그걸 회피.
회전의 기세로 키리에와의 거리를 좁히고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그 말도 안 되는 움직임에 키리에는 반응하지 못한다.
“보석을 썩히고 있는 거라네, 자네는!!”
하복부를 노린 마르크스의 찌르기.
“——「신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니!(프레이 이지스)」
키리에의 영창과 동시에 출현한 보이지 않는 벽에 검이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곧장 마르크스가 손바닥을 내리쳤지만 벽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성광신」의 방어 마술인가.”
“네. 당신으로선 이 수호를 부술 수 없어요.”
벽에 손을 둔 채로 포기한 것처럼 마르크스가 고개를 숙인다.
그걸 보고 눈을 내리깔더니 키리에는 슬픈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르크스 씨. 이 이상, 죄를 저지르지 말아 주세요. 멜트 신께서는 말씀하셨어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세요』……라고요.”
“키리에 군…….”
“인간은 누구든지 실수를 범해요. 범한 후에 뭘 어떻게 하는 건지가 중요한 거에요. 마르크스 씨. 저랑 함께 기사단 숙소로 가죠. 거기서 확실히 사정을 설명하면——.”
키리에의 말에 마르크스가 고개를 들었다.
이해해 준 건가 하고, 키리에가 긴장을 풀 뻔 했다.
하지만 직후에 마르크스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비웃음을 보고 굳었다.
“자네는, 정말로 바보 같은 여자라네.”
「신은 나를 버리지 않을지니」에 닿아 있던 마르크스의 팔이 검붉은 빛을 내뿜었다.
그 소름 끼치는 빛을 보고 키리에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마술 찬탈(스펠 디바우어)」
그녀를 수호하고 있던 벽이 마르크스의 오른팔에 삼켜졌다.
방어 마술이 간단히 파괴되자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키리에.
“……헉.”
“느리다고.”
하얀 화염이 날아오기도 전에 마르크스의 팔이 키리에의 목을 붙잡았다.
키리에의 가련한 몸을 간단히 들어올리며 격하게 방 벽에 내던진다.
그 충격에 키리에의 의식이 날아갈 뻔했다.
“그……건.”
키리에의 목을 붙잡고 있는 마르크스의 팔.
노출된 피푸에 수많은 검붉은 혈관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관의 중앙에 있는 건 두근두근 맥동하는 마름모 형태의 결정체다.
“이게 신경 쓰이는 건가?”
“……!”
“「영웅 아마츠」의 힘의 일부라네. 죠지와 릴리한테 협력하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얻은 거지.”
끈적한 미소를 지으며 마르크스는 얘기한다.
죠지와 릴리는 「영웅 아마츠」의 세포와 마력을 재현하려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마츠가 쓰고 있던 「마술 찬탈」이라는 마술을 어느 정도 재현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실용적이지 않다며 그 녀석들은 호문쿨루스 연구로 방향 전환을 한 모양이지만 말이야.”
“커……, 헉……!”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마르크스의 몸의 일부가 변형한다.
옷 사이사이에서 검붉은 촉수 같은 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끝부분에는 수많은 이가 돋아난 원형 입이 붙어 있다.
“이걸로 다른 사람을 먹어치우면 그 힘의 일부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윽…….”
“키리에 구운……. 자네의 부드러운 피부를 먹어치우고, 피를 빨아들이고, 뼈를 박살 낼 거네. 그렇게 하면 나는 자네의 성창 마술을 얻을 수 있는 거지.”
촉수가 꿈틀대더니 키리에한테 다가온다.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키리에였으나, 마르크스의 괴물 같은 완력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자네가 내 애완동물이 된다면 살려줄 수도 있네만?”
오물로 덕지덕지 칠해진 듯한, 욕정에 뒤덮인 마르크스의 미소.
몽롱한 의식 속,
“……싫,어요……!”
키리에는 그걸 거부했다.
여기서 굴하는 건 자신이 신봉하는 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다.
그것만큼은 불가능하다.
“가증스럽군. 애송이 년 주제에 나를 거절하다니 말이야.”
“……큭!”
“뼈의 골수까지 전부 먹어치워 주마.”
크게 입을 벌린 촉수가 키리에한테 덮쳐 든다.
“————.”
먼 날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
외로웠다.
부모님은 교단에서의 지위를 올리는 데에 전념하고, 키리에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혼나고 싶지 않아서 키리에는 어른스럽고 착한 아이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속 누군가한테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한테 얘기를 해 봐도 잘 알아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연상 남자애한테 얘기해서 “그것보다 나무타기 하자.” 라는 말을 들었을 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상담할 수 있는 어른은, 없었다.
그런 때 한 소년과 만났다.
소심하고, 겁쟁이에, 살짝 둔한 감이 있는 남자애.
마을 아이들한테 바보 취급당하는 걸 키리에는 알고 있었다.
마을 바깥에서 멍하니 그한테 얘기를 걸었던 건 그냥 변덕이었다.
그냥, 심심풀이.
키리에는 일방적으로 불평을 토했다.
어차피 이해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말이야.”
소년은 키리에의 얘기를 듣고 자신이 생각했던 걸 확실하게 얘기해 주었다.
더듬더듬 거리고, 소년은 말주변이 없었지만.
제대로 얘기를 들어줬던 게 키리에는 기뻤다.
그 후로 키리에는 소년과 얘기하게 됐다.
소년과 만나고 나서 2년 정도 지나게 됐을 때였을까.
활발한 키리에와 사이가 좋아지면서 소년은 마을 아이들과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자, 가자.”
“그렇지만……위험해.”
“괜찮다니까!”
그날, 마을 아이들끼리 모여서 키리에 일행은 출입금지 된 숲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그저 모험하고 싶었다는 유치한 것이다.
싫어하는 소년을 억지로 이끌고 키리에 일행은 숲 안으로 들어갔다.
“아……!”
그러던 도중, 키리에는 아름다운 꽃밭이 있는 걸 찾아낸 것이다.
왠지 살아있는 꽃이 괜히 갖고 싶어져서 줄에서 빠져 나와 키리에는 꽃밭 안으로 들어갔다.
본 적도 없는 아름다운 꽃에 한껏 빠져 있던 도중, 키리에는 혼자서 숲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어라?”
정신을 차렸을 땐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해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숲 안을 홀로 키리에는 몇 시간이나 헤멨다.
해가 저물고, 주변이 어두워져서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무섭고, 슬프고, 불안했다.
그리고, 헤메고 있던 도중에.
『르르……』
결국 키리에는 마물과 만나고 말았다.
작은 늑대 형태 마물이 여러 마리, 군침을 흘리면서 키리에한테 덮쳐 들었다.
어쩌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살려줘……!”
그, 직후의 일이었다.
누군가가 키리에와 마물 사이에 끼어 든 것이었다.
“————.”
달빛조차 없는 어두운 숲.
아무도 구하러 와 주지 않은 어둠 속.
마물한테 습격 당해 죽을 뻔 했을 때.
“이……이제, 괜찮으니까……!”
몸을 벌벌 떨어대며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이 행동하면서.
나무 곤봉을 손에 쥐고 키리에를 지키기 위해 달려 온 사람이 있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
퉁, 하고 뭔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잘 보니 베어나간 촉수가 땅에서 움찔움찔 버둥대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고통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난다.
“——이, 노옴!”
이어서 옥죄어져 있던 목이 스윽 하고 편해진다.
자세를 무너트리고 땅에 쓰러진 키리에의 몸을 따듯한 무언가가 지탱했다.
그건 그때의 재현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그는 몸을 떨지도, 울 것 같지도 않았으며.
격분의 표정을 짓고 한 자루 검을 쥐고 있었다는 점이리라.
“——이제, 괜찮으니까.”
상냥한 말투로 그렇게 말한 건,
“레오, 군…….”
레오 윌리엄 디스프렌더.
——키리에의 소중한, 소꿉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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