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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제 9화 『쥬젯페의 장난』
“내 임무 시간은 첫날 오후랑 셋째 날 오전 중이네.”
“그러면 나랑 타츠미는 같은 조니까 내 임무 시간도 첫날 오후랑 셋째 날 오전 중이라는 건가. 그럼, 마지막 날 오후부터 시작하는 기승 창 시합은 볼 수 있을 것 같네. 좋아, 나나우랑 같이 보러 가자.”
“우리 삼형제는 그 시간대에 일인데……젠장, 기승 창 시합,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잖아, 니즈 형. 이것도 일이니까.”
여긴 서바이브 신전의 안뜰. 코앞으로 다가온 신년제 임무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타츠미는 어느 날 휴식 시간에 바스나 니즈 형제들과 이런저런 화제로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저는 분명, 이틀째 오전이 임무 시간이었을 거에요……아, 그렇지만 할아버님께서 셋째 날 오후에, 할아버님이 가시는 신생아에게 내려주는 축복 의식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아아, 그, 그거면 나도……부, 부탁 받았던가.”
어째선지 살짝 뺨을 물들이면서 타츠미는 자기 옆에 앉아있는 칼세드니아한테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타츠미의 그런 태도를 보고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칼세드니아는 축제 중 스케줄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둘째날 오후엔 서방님이랑 같이 축제를 볼 수 있겠네요!”
“그, 그러게.”
“둘째 날 오후라면, 달의 신의 신전이 주최하는 보물찾기 대회가 있지 않나? 그럼 칼세랑 같이 거기 참가해 보면 어때? 너라면 이동하는 데 별로 시간도 안 걸리니까, 보물도 잔뜩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글쎄? 그렇게 간단하진 않을 것 같은데……졸트, 그러는 너는 예정 있냐?”
“나? 내 예정이라고 하면 첫날에 할아버……아니, 국왕 폐하의 인사 때 구석편에서 얼굴만 좀 내미는 정도라, 그것 말고는 딱히 예정 없는데? 아빠라면 모를까, 나는……글쎄? 아직까진 『아이 취급』이니까.”
어째선지 최근들어 곧잘 서바이브 신전에 나타나는 졸트.
바스 일행도 당초엔 대체 누구냐는 의문과 함께, 옷매무새로 짐작해 보건데 귀족이거나 상당히 높은 가문의 자제라고 예측했었다. 하지만 타츠미와 졸트는 뭔가 친해보였고, 자신들한테도 신분을 신경 쓰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해줬기 때문에,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바스 일행도 상당히 그와 마음을 터놓고 있었다.
역시 타츠미도 졸트의 신분을 밝히진 않았다. 만약 바스 일행이 졸트의 신분을 알게 된다면, 아무리 타츠미의 지인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는 없었으리라.
참고로 방금 전 졸트의 “국왕 폐하의 인사 시간에 구석가에서 얼굴을 내민다.” 라는 말도 바스 일행한테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사가 아니었다. 국왕이 신년 인사를 할 땐, 모든 귀족이 그곳에 입회하는 게 전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트와 타츠미가 친하게 지내고 있는 걸 보고 가장 놀랐던 건 다름 아닌 칼세드니아였으리라.
갑작스레 서바이브 신전에 모습을 드러낸 졸트. 종자를 데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혼자서 신전 안을 걸어다니는 그의 모습을 봤을 때, 칼세드니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었다.
거기다 갑자기 “안녕, 칼세, 오랜만이네―. 그런데, 타츠미는 어딨어? 같이 있는 거 아냐?” 라며 뭔가 타츠미와 친하게 지내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녀는 한층 더 놀라워했다.
나중에 타츠미한테서 졸트와 만난 사건을 듣고, 왕족――그것도 장래의 국왕과 알게 됐으면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타츠미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경악을 뛰어넘어 질려 버렸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기승 창 시합이라는 걸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거라면, 둘째 날 오후에는 예선 선발이 있을 걸요? 셋째 날……마지막 날 오후는 본선이니까, 그 전에 예선이 있는 거에요.”
“그래? 그럼 그거 구경이나 하러 갈까? 칼세, 너도 같이 갈래?”
“네, 물론 같이 갈게요!”
타츠미와 같이 가는 게 기쁜 건지, 칼세드니아는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지으며 즉답했다.
바스나 니즈 형제한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지만, 졸트한테는 좀 달랐다. 그는 칼세드니아가 이렇게 밝은 미소를 짓는 걸 처음 본 것이다.
“우와, 얘기론 들었는데 진짜 칼세, 타츠미 앞에선 그런 표정 짓는구나. 이야, 완전 깜짝 놀랐네.”
“거 봐, 졸트. 우리들이 말한 그대로지? 칼세드니아 님은 타츠미한테는 늘 이런 느낌이라니까.”
“응, 너희들한테서 얘기는 들었는데……이렇게 실제로 보기 전까진 반신반의었다니까. 예전의 칼세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썬 말이야.”
“우리들은 예전 칼세드니아 님에 대해선 소문 정도밖에 모르니까 말이야. 이렇게 칼세드니아 님이랑 친해진 것도 타츠미랑 약혼하기 직전이라, 그땐 이미 이런 느낌이었거든.”
“그래도, 예전 칼세보다 지금 칼세 쪽이 훨씬 낫단 말이지? 그래, 역시 다시 생각해 보니까, 타츠미는 엄청난 업적을 이뤄낸 거야.”
“저, 저기요, 졸트 님……? 너, 너무 옛날 얘기를 꺼내시는 건, 그게…….”
역시 옛날에 있던 일을 다른 사람이 들춰내는 건 부끄러우리라. 칼세드니아는 뺨을 물들이면서 힐끔힐끔 옆에 있는 타츠미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엿보고 있다.
그런 칼세드니아를 보고 타츠미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 보고도 칼세드니아의 표정에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엉덩이의 위치를 옮겨서 앉아있는 위치를 조절해, 타츠미가 있는 쪽으로 좀 더 다가갔다.
“아, 그렇지, 칼세. 나 부를 때 『님』 자 붙이는 거 금지. 다른 애들도 다 그런 호칭 없이 부르고 있으니까, 너도 그렇게 해. 알겠지?”
“어, 하, 하지만…….”
“『님』자 떼는 게 힘들면, 옛날처럼 『졸트 군』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할아버지들이 소개해 줘서 막 알게 됐을 땐 그렇게 불렀잖아?”
“그, 그건 서로 어렸으니까요……그, 그게……정말로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괜찮아.”
졸트가 기쁘다는 듯이 미소 짓는다.
“저, 저어!! 가, 가능하다면 저도 칼세드니아 님께서 『시로』 라고 불려주셨으면 하는데요!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비참하게 땅을 빌빌 기어다니는 저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면서 굽이 높은 신발로 밟아주면서 부탁드려요!”
그때까지 졸트와 칼세드니아의 대화를 어딘가 부럽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시로가 끼어들었다.
당연히, 무시당했다.
타츠미 일행의 느긋한 휴식시간은 안뜰에 어떤 한 신관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갑자기 끝을 고했다.
입고 있는 신관복과 성인으로 보아, 그 신관의 신분이 고위 사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야마가타 상급 신관.”
안뜰에 나타난 고위 사제는 온화한 미소와 차분한 낮은 목소리로 타츠미를 불렀다.
“예.”
이름을 불린 타츠미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타츠미 뿐만 아니라 칼세드니아나 바스 일행을 포함한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다.
유일하게 신관이 아닌 졸트만이 태연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크리소프레즈 예하께서 부르신다. 곧바로 예하의 집무실로 가게나.”
“알겠습니다.”
온화하지만 묘하게 박력이 담긴 목소리를 듣고 타츠미가 즉답했다.
고위 사제는 쥬젯페가 내린 전언을 전하더니, 미소를 지은 채로 타츠미 일행한테서 등을 돌리고 안뜰을 떠났다.
“자, 그럼. 휴식시간은 끝이네. 이제부터 또 일해야지.”
기지개를 펴면서 바스가 말한다.
칼세드니아도 니즈 삼형제도 휴식시간을 마치고 각자 자신의 업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럼, 얘들아. 일 열심히 해―.”
단 한 명, 졸트만이 느긋하게 타츠미 일행을 격려하고 있다.
“그러는 너는 뭐 할 거냐?”
“나? 너희들의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집으로 돌아갈 거야.”
졸트는 힐끔 자신의 집――궁정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할아버님은 무슨 용건 때문에 서방님을 부르신 걸까요?”
“으, 음―, 뭐, 뭐어, 가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칼세드니아를 보며, 타츠미는 살짝 난처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나는 쥬젯페 씨가 계시는 곳으로 가 볼게.”
“네, 그럼 또 집에서 봬요.”
쥬젯페의 집무실로 향하는 타츠미를 향해 활기차게 손을 흔드는 칼세드니아. 바스나 니즈 삼형제도 각자 자신의 직업장으로 돌아갔고, 졸트도 신전을 뒤로 했다.
“어떤가, 사위. 칼세 녀석한테 들키진 않았을 터지?”
쥬젯페의 집무실로 들어간 타츠미를 향해, 서바이브 신전의 최고 사제는 정말 즐겁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한테 물었다.
“네. 괜찮다고……생각해요. 집에서도 아무 말 안 했으니까요.”
“그런가, 그럼 됐네. 앞으로 조금만 더 비밀로 부탁하겠네.”
장난을 꾸미는 못된 꼬마가 짓는 미소를 쏙 빼닮은 쥬젯페의 미소. 그런 은사를 보고 타츠미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런데……준비 쪽은 괜찮은 건가요?”
“괜찮다네. 어디 사는 암여우도 흔쾌히 협력해 주고 있다네. 이미 대강 준비는 끝난 모양인지, 이제 남은 건 본편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네. 자네 쪽은 어떻게 되가고 있는가?”
“저도 쥬젯페 씨가 가르쳐 주신 가게에서 당일 제가 입을 의복 준비는 마쳐 놨어요. 물론, 칼세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고요.”
타츠미의 대답을 듣고 쥬젯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축제도 코앞으로 다가왔구먼. 정말로 이번 축제는 기대가 된다네.”
“저는 솔직히, 그럴 정신머리도 없네요. 긴장돼서 지금부터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아요.”
“허허허. 지금부터 그런다니, 당일이 되면 죽어버릴지도 모르겠구먼?”
즐겁다는 듯이 웃는 쥬젯페. 하지만 그는 갑자기 표정을 바꿨다.
“미안하구먼, 사위. 자네한테는 민폐일지도 모르겠네만, 이것도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의 부탁이라고 여겨 주게나.”
“여,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뇨……쥬젯페 씨는 아직 건강하시잖아요!”
“그렇지도 않네만? 나는 이미 충분히 장수하고 있다네. 게다가 늙은 사람부터 순서대로 신의 곁으로 불려가는 건, 그것대로 행복한 증거일세.”
“……『할아버지 죽고, 아버지 죽고, 아들 죽는다』란 건가요…….”
“응? 뭔가, 그건?”
“제 고향……일본 어느 지방의 민화 같은 데에 나온 건데요, 예전에 살짝 주워들은 게 있어서요……자세한 부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요점은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순서대로 죽어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이가 병 없이 건강이 살다가 수명을 다 한 증거라는 얘기에요.”
“호오, 그렇구먼……상당히 뜻 깊어보이는 얘기로구먼.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얘기를 자세히 들려 주게나.”
타츠미의 얘기를 들은 쥬젯페는 흥미롭다는 듯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그 얘기는 칼세한테는 하지 않았는데요, 다른 지인들한테는 해도 상관없나요?”
“음, 최근엔 사위 자네도 교우 관계가 넓어지고 있는 모양인데다, 모처럼이니 친구들이 전부 모여서 성대하게 벌여보고 싶구먼. 사위의 지인들한테 가르쳐 주는 건 상관없네만, 아무쪼록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이 무거운 사람들한테만 해 주지 않겠나?”
“네. 지인 중에서도 입이 가벼울 것 같은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 둘게요.”
두 사람이 나눈 얘기만을 들어보면, 마치 뭔가 나쁜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은 모습이지만, 타츠미가 보여주는 어딘가 쑥스러운 태도로 보아 그게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건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이리 하여, 쥬젯페의 이른바 「행복한 장난」은, 타츠미의 지인들――입이 가벼울 것 같은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한테도 퍼져 가서, 조용히 분위기를 들뜨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해를 알리는 신년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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