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현재 일본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되고 있는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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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제 10화 『신년제』
“랄고필리 왕국 국왕 발라이드 레조 랄고필리의 이름을 두고, 여기서 새로운 해를 맞이함과 함께 신년제의 개최를 선언한다!”
궁정 뜰에 나와 있는 발코니.
거기서 모습을 드러낸 랄고필리 왕국의 국왕은 왕족이나 서민이 모여든 안뜰을 향해 당당하게 그렇게 선언했다.
이 시점 이후로, 국왕의 말대로 새로운 해의 시작과 올해 신년제가 막을 연 것이다.
국왕의 선언과 동시에 국왕의 안뜰에선 술이나 요리가 차려지기 시작했다.
이 축제 동안엔 궁정의 일부도 일반인들한테 공개되어 평소엔 결코 발을 디딜 수 없는 궁정 안을 서민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다.
물론 중요 구획은 출입 금지이며, 그런 곳에는 화려한 복장의 의례용 무기나 갑옷을 장비한 병사나 기사가 서 있었다.
하지만 기사들의 그 화려한 모습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매우 호평이 좋아서――아이들, 특히 남자애들은 평소엔 근처에서 볼 수 없는 기사들의 늠름한 모습을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또한, 아이들한테서 동경의 눈길을 받는 기사들도 쑥스러워하면서도 가슴을 피며 아이들의 기대에 자랑하듯이 부응해주고 있었다.
개중에는 금방 술에 취해 출입 금지 구획에 들어가려다 기사한테 붙잡히는 자들도 있지만, 그것도 또한 신년제의 광경 중 하나다.
당연히 궁정 말고도 레반티스 도시 전체도 큰 활기를 보이고 있으며, 거리 여기저기선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악사나 곡예사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며 서로 경쟁하고 있다.
시장에는 한 데 모인 상인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진열하며 고객을 불러들이는 데에 열중이다.
이날만큼은 평소엔 도시로 물건을 사러 나오지 않는 귀족들――귀족들은 평소에 하인들한테 물건을 사오도록 시키거나, 상인을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도 서민들과 함께 상인들이 진열한 상품을 물색하는 데에 바빠 보였다.
하지만 도시가 이렇게 시끌벅적해지면 당연히 소매치기나 도둑질 같은 범죄도 늘어난다.
따라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 갑옷 차림의 호위병이나 신관 전사들의 모습이 도시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이게 이 나라의 축제구나…….”
신관 전사의 장비들을 착용한 모습으로 도시를 걸어다니던 타츠미는 즐거워 보이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무심코 중얼거렸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여러 음악이 흘러나오는 도시 속에선 모든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전달해 주었다.
축제의 들뜬 분위기는 만국 공통인 것이리라. 그건 이세계라 하더라도 변함이 없다. 타츠미는 도시를 둘러보면서 그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동시에 주변에 늘 경계의 시선을 보낸다.
지금 그는 신관 전사로써 치안 유지 임무 중이다.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다가, 범죄를 놓쳐버려선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축제 한복판. 타츠미도 끓어오르는 이 마음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나저나 쥬젯페 님도 엄청난 요구를 하셨네 참.”
어이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한 건 타츠미와 같이 도시를 순찰하고 있는 바스다. 당연히 그도 신관 전사의 장비를 착용하고 활기찬 도시 안을 걸어다니고 있다.
“그래서, 너는 쥬젯페 님의 계획을 받아들인 거냐?”
“뭐……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긴 하지만…….”
자신의 은사이자, 이미 가족이라 여기고 있는 쥬젯페의 부탁이라면, 타츠미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거절할 생각은 없다.
확실히 간단히 수긍할만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쥬젯페의 계획은 언젠가 타츠미가 지나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살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확실히 엄청난 의뢰긴 하지만……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까…….”
“예―예―. 잘 알겠수다.”
질렸다는 듯이 말하는 바스. 물론 팔꿈치로 타츠미의 옆구리를 살짝 강하게 찌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그래서 방금 말했던 거 말인데…….”
“어, 알겠어. 기승 창 시합의 결승을 보러 갈 생각이긴 했는데, 그쪽이 더 재밌을 것 같네. 근데, 나나우한테는 뭐라고 설명해 두지?”
“역시, 나나우 씨한테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나으려나?”
“그 편이 좋을 거다. 그 녀석, 그래 봬도 꽤 수다쟁이거든. 게다가 내용이 내용이잖냐. 여자애들은 수다 떨다가 자기도 모르게 툭 하고 내뱉는 경우가 있을 수 있거든.”
“그럼, 미루일한테도 말하지 않는 편이 나으려나……?”
타츠미는 마수 사냥꾼의 동료인 소녀의 모습을 뇌리에 그렸다.
“음―, 글쎄다? 나는 그 사람하곤 그렇게 친하지 않으니까. 네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는데.”
바스와 미루일은 타츠미를 통해서, 혹은 〔엘프의 쉼터〕의 종업원이자 바스의 연인인 나나우를 통해서 몇 번인가 얼굴을 마주친 적은 있다.
하지만 그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미루일이 나나우 씨한테 얘기를 흘려보낼 가능성이 있는데…….”
“확실히,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여자들이 들떠할 건 눈에 보이는 일이니까. 비밀 누출을 생각해 보면 알리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네.”
타츠미로써는 미루일이 그렇게 입이 가볍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바스가 말하는대로 내용이 내용이다. 게다가 역시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은 편이 낫다.
“……어쩔 수 없지. 미루일한테는 미안하지만 말 안 할래. 걔한테는 당일에 자독한테 부탁해서 회장으로 데려와 달라고 할까.”
타츠미는 마음속으로 미루일한테 사과하면서 그렇게 결단했다.
“남은 건……혹시 모르니까, 니즈 형제들한테도 말 안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지 않냐? 사고는 의외로 입이 무거울 것 같지만, 시로는 분명 가벼울 것 같잖아.”
“응, 그건 나도 동감이야.”
미루일 때처럼 망설이는 일 없이 타츠미는 즉시 결단했다.
각 신전 안뜰에 설치된 구호소. 신년제 기간 중 구호소는 가장 바쁜 부서 중 하나일 것이다.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서 너무 술을 많이 마신 사람, 사소한 일로 서로 주먹다툼을 하게 된 사람, 혹은 기승 창 시합이나 깃슈 대회에서 나온 부상자 등등.
온갖 부상자들에 더불어, 미아가 된 아이까지 구호소에 맡겨진다.
그런 자들의 상대를 해 주는 신관들한테 있어서 이곳은 그야말로 전장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 전장의 한 구석에서 칼세드니아는 부상자의 치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네. 이제 괜찮아요. 그렇지만 아무리 축제라고 해도, 너무 사소한 일로 싸우시면 안 돼요?”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주먹다툼을 하고, 서바이브 신전의 구호소에 떠맏겨진 중년 남자는 쑥스러워하면서 《성녀》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거, 확실히 너무 열을 낸 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성녀》님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야, 싸움 정도는 얼마든지 해 주겠다 이거야!”
크하하하 하고 웃는 중년 남성. 칼세드니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지금 막 자신이 치료해 준 상처 부위――왼쪽 뺨을 얻어맞은 모양이라, 진통제 연고를 발라주고 있었다――를 살짝 세게 짝 하고 때렸다.
“아야야야야야야.”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어, 응. 아니, 상당히 엄격한데, 《성녀》님도. 그래선 소문의 약혼자한테 미움 받는 거 아닌가?”
《성녀》라고 불린 칼세드니아가 흑발흑안의 이국 청년과 약혼했다는 소문은 최근 왕도 안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중년 남자도 그 소문을 들은 모양이다.
“걱정하지 마시길. 저랑 서방님은 무척이나 사이좋게 잘 해나가고 있으니까요.”
싱긋 미소 짓는 칼세드니아. 그 미소를 보고 무심코 넋이 나가버린 중년 남자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거, 큰일 났네. 설마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약혼자 자랑을 할 줄이야.”
중년 남자는 칼세드니아한테 마지막으로 인사하더니, 그대로 구호소를 뒤로 했다.
그 확실한 발걸음을 보고 칼세드니아도 남자가 문제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다음 부상자의 치료를 맡으려고 했을 때.
그녀의 근처로 다가온 나이가 지긋한 여성 신관이 칼세드니아한테 말을 걸었다.
“칼세드니아 님은 이제 슬슬 휴식을 취해 주시지요. 여긴 제가 대신 맡겠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칼세드니아는 중년의 여성 신관과 교대하고는 구호소에서 일하는 신관들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어머, 칼세. 너도 휴식이니?”
“아, 칼세드니아 님. 수고하셨어요―.”
대기실로 들어온 칼세드니아한테 말을 걸은 건 푹신푹신한 감색 머리카락과 푸른 기미가 들어간 잿빛 눈동자의 소녀와, 살짝 거뭇거뭇한 느낌이 있는 금발과 갈색 눈동자를 가진, 칼세드니아보다 살짝 연상의 느낌이 있는 여성 신관.
감색 머리칼의 소녀는 하급 신관, 그리고 금발 여성은 시제(侍祭)의 신분을 나타내는 성인을 목에 걸고 있다.
“쿠리랑 라라이나? 너희들도 휴식 중이니?”
잘 아는 얼굴을 찾아낸 칼세드니아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신관의 대기실이라 하더라도, 여긴 신전의 안뜰 한구석에 천막을 쳐 놨을 뿐이다. 따라서, 그럭절거 넓긴 하지만 의자나 테이블은 몇 개 없다.
쿠리와 라라이나는 의자가 아니라 땅에 깔린 돗자리 위에 직접 앉아있었기 때문에, 칼세드니아도 그녀들 근처에서 돗자리 위에 앉았다.
쿠리는 익숙한 손길로 차를 우려내더니, 은은하고 향 좋은 차를 칼세드니아한테 내밀었다.
“근데 괜찮은 건가요, 칼세드니아 님? 오늘 칼세드니아 님은 업무가 있는 날도 아니었을 텐데…….”
“우리들은 네가 도와준 덕분에 엄청 편해졌지만 말이야. 근데, 소문의 약혼자랑 같이 축제를 보러 가진 않는 거니?”
쿠리와 라라이나는 칼세드니아의 몇 없는 친구들이다.
특히 라라이나는 칼세드니아와 동기라, 별로 친구가 없는 칼세드니아를 어떻게든 신경 써 주려고 했던 언니 같은 존재이자, 그녀와의 인연은 지금도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쿠리는 칼세드니아의 부하 격에 해당하는 인물로, 예전에 타츠미한테 전언을 주러 가기도 했던 소녀이다.
“나라면 괜찮아. 그야, 오늘 오후엔 서방님이 임무가 있으시니까, 집에 혼자 있어도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게다가, 서방님의 임무가 끝난 뒤엔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겸 잠깐 저녁 축제를 돌고 올 예정이거든.”
기쁘다는 듯이 미소 짓는 칼세드니아는.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본 라라이나와 쿠리는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봤다.
“……요즘 칼세드니아 님은 많이 바뀌셨네요.”
“정말로. 예전엔 이렇게 자연스럽게 안 웃었는데. 근데, 너무 자연스럽게 자기 약혼자 자랑하는 게 짜증나는걸. 설마, 칼세가 우리들한테 이런 자랑을 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라라이나도 쿠리도 타츠미와 조금 얘기를 나눈 것 정도라면 있기야 있지만, 그렇게 친하진 않다.
하지만 칼세드니아의 마음은 아주 잘 알고 있고, 그녀의 약혼자인 타츠미도 또한 칼세드니아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특히 라라이나는 이렇게 농담을 던지고 있긴 해도 그 표정은 상냥하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칼세드니아도 그녀의 말을 가볍게 흘려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우후후. 방금 전 오신 부상자 분도 똑같은 말을 하시던데.”
“아―, 그―러―세―요―.”
라라이나가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린다.
“그렇게까지 자랑할 정도니까, 약혼에서 그치지 말고 그냥 얼른 결혼해 버리면 어때?”
“뭐……? 결……혼?”
타츠미와 결혼하는 자신을 망상하다가,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지는 칼세드니아.
“이미 1년이나 같이 살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쑥스러워 하는 거야……?”
그런 칼세드니아를 보고 라라이나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치만……!! 다, 다시 결혼을 하게 되면……그, 그게…….”
“그럼, 그 약혼자 분이랑 정식으로 결혼하고 싶진 않은 거야?”
“겨, 결혼하고 싶지!! 엄청나게!!”
새빨간 얼굴로 주먹을 꽉 쥐며 즉답하는 칼세드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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