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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 4장 제 5화『트리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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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현재 일본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되고 있는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의 번역입니다. 


원본 링크는 여기


4장 제 5화 『트리아지』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부지고 커다란 몸을 한 남자로, 외견상 나이는 40대 전후 정도일까.

얼굴은 훤칠한 편이지만, 그 아래쪽 부분 절반이 두꺼운 수염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거친 인상 쪽이 더 강하다.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이나 그 행동거지로 보아, 그 남자가 신분이 높은 인물이라는 건 일목요연했다.


“그래서? 무슨 소란을 피우는 거냐?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닐 텐데?”


남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타우로드 대장님! 사실은 이 건방진 신관이 《성녀》 공의 치유를 방해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검을 뽑으려 하고 있던 기사가 타츠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치유를 방해한다고……?”


타우로드라 불린 남자는 그 날카로운 시선으로 타츠미를 쳐다봤다.

하지만, 타츠미는 그 시선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옆에 있던 칼세드니아를 보고는 기뻐 보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귀군이 말하는 건방진 신관이라는 건, 내 처남을 말하는 건가?”

“예……예!? 타우로드 대장님의 처남……말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곧 처남이 될』 이지만, 나는 이 녀석을 이미 처남이라 여기고 있지.”


그때까지 사나운 기세를 보이고 있던 기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타우로드와 타츠미를 몇 번이나 번갈아 봤다.


“타츠미, 칼세. 상황을 알려다오.”


타우로드는 엄격한 표정을 지은 채로 타츠미와 칼세드니아한테 그렇게 말했다.




타우로드 크리소프레즈.

왕도 기사단 제 2분대 대장을 맡고 있는 남자로, 쥬젯페의 장남이자 칼세드니아의 의붓 오빠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나이로 보자면 칼세드니아와는 부모 자식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지만, 그는 막내 동생이 된 칼세드니아를 가족으로써 귀여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칼세드니아의 반려가 될 타츠미에 관한 건, 맨 처음엔 수상쩍다는 듯이 느꼈었지만, 아버지인 쥬젯페나 동생인 칼세드니아한테서 그의 얘기를 듣고, 실제로 그와 만난 다음 말을 나눠본 결과 귀여운 의붓 동생을 맡기기에 충분한 남자라고 판단했다.

그 뒤로는 그가 말한 대로 타츠미를 처남으로써, 그리고 가족으로써 대하고 있으며, 타츠미도 또한 이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매형을 신뢰하고 있었다.


“타우로드 오라버니. 그게…….”


칼세드니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오빠와 타츠미를 번갈아 본다.


“그, 그게 말이죠, 타우로드 씨…….”

“……타츠미?”


타우로드는 누가 보기에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표정을 짓더니, 타츠미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봤다.

한 순간, 움찔 하고 몸을 떤 타츠미였지만, 곧바로 어딘가 쑥스럽다는 듯이 말을 수정했다.


“그, 그게……타우로드 매형.”

“음, 됐다.”


타츠미한테 「매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자, 타우로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우로드는 타츠미를 인정한 이후로, 타츠미한테 자신을 「매형」 혹은 「형님」이라 부르라고 강요하고 있다.

타츠미가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방금 전처럼 확 기분을 해칠 정도로, 그는 가족한테 있어서는 관대한 사람이었다.


“긴급사태다. 짧게 설명해라.”


타우로드의 말을 듣고 타츠미는 짧게 설명을 했다.

이러한 재해나 사고 현장 같은 곳에서 의료 물자가 한정되어 있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을 경우엔, 한시를 다투는 사람부터 치유를 해야 한다는 것, 그렇기 위해선 실제로 치유하기 전에 부상자를 긴급한 정도에 따라 분별할 필요가 있다는 등등, 타츠미는 TV 드라마 같은 데에서 들었을 뿐인 지식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면서 타우로드한테 설명했다.


“……이런 사고방식을 제 고향에서는 『트리아지』라고 합니다.”

“흠. 확실히 그건 이치에 따라 행동하는 사고방식이로구나. 하지만, 이 나라의 상식으로 보아 그 생각은 별나군.”


타우로드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는 역시 귀족 같은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먼저 치유를 받는 듯하다.

일의 옳고 그름은 제쳐 두고, 이 나라의 상식이라는 점으로 보아, 타츠미가 한 말 쪽이 더 이상하다는 건 틀림없으리라.


“그리고, 다들 제각각 따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점도 문제가 아닌가요? 누군가가 지휘를 해서, 그 지시에 따라 치유를 하는 편이 효율적일 텐데요.”

“그 점에 관해선 이 사고를 들으신 국왕 폐하께서, 나한테 현장 지휘를 맡도록 명령을 내리셨다. 내가 이곳에 온 건 그것 때문이다만…….”


타우로드는 현장을 둘러봤다.

이곳저곳에 부상자가 쓰러져 있으며, 개중에는 의식이 없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좋아. 이곳의 지휘는 네가 맡거라.”


라고, 타우로드는 갑자기 타츠미한테 엄청난 소리를 했다.





“제, 제가 이곳을 지휘하라고요……!? 무, 무리에요!!”

“하지만, 네가 말한 『트리아지』라는 생각은 우리한테는 연이 없는 거라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네가 말한 그 방식이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늘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 방식에 정통한 네가 지휘를 맡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저, 정통해 있다니……저도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정돈데요!?”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보다는 나을 거다. 걱정하지 말거라, 네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이나 세세한 부분은 내가 보좌해 주지. 칼세도 네 지시는 기꺼이 따르겠지.”


타우로드의 말을 듣고 칼세드니아 쪽을 쳐다보니,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방금 전엔 저도 모르게 흥분해 버려서 죄송해요. 한시라도 빨리 부상자를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건 어쩔 수 없지. 나는 아직 이 나라의 상식은 제대로 모르고.”


이곳에서 칼세드니아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 《성녀》로써 유명한 그녀가 치유를 해 주기 위해선 상황이 좀 더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칼세드니아가 혼자서 다른 사람들을 치유해줄 경우에만 유효한 것이다. 이곳에 있는 치유 마법사들 전부를 효율 좋게 운용하기 위해선 타츠미가 말했던 트리아지를 실천하는 편이 더 나을 게 분명하다.


“……알겠어요. 한 번 해 볼게요.”


타츠미는 살짝 고민한 뒤, 그렇게 판단했다.

지금은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당장에라도 치유를 하지 않으면 숨이 끊어질 부상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럼, 타우로드 매형. 일단은 치유 마법사들 전원을 여기로 모아 주세요. 그 뒤로 마법은 쓸 수 없어도 의료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사들도 다 같이요.”

“알겠다.”


타우로드는 부하들한테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와 의사를 모아오라고 시켰다.

그의 부하들은 당장 타츠미가 요구한 사람들을 모아, 타츠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타츠미는 그 사람들 앞에 서서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서바이브 신전의 야마가타 상급 신관입니다. 왕국 기사 타우로드 공의 요청에 따라, 이곳의 지휘를 맡게 됐습니다. 다들 불만도 있으시겠지만, 지금은 긴급사태입니다. 여기선 제 지휘에 따라주십시오.”


그의 앞에 모인 마법사나 의사들은 낯선 흑발흑안의 청년을 바라보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츠미의 등 뒤에 왕국 기사인 타우로드와 유명한 《성녀》가 있었기 때문인지,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먼저 의사 분들한테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상자들을 한 사람씩 진단하러 간 다음, 부상의 정도에 따라 표시를 해 주세요.”

“표시라니……뭘 위해서 표시를 하는 거지?”


의사 한 사람이 질문한다. 그에 맞춰 다른 의사나 마법사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부상의 정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그리고 부상이 심한 사람부터 우선해서 치유 마법을 걸 겁니다.”

“뭐라고? 귀족을 우선하는 게 아닌 건가?”

“네. 여러분들한테는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선 지금까지 해 오던 전통은 무시해 주십시오.”


의사나 마법사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타츠미의 등 뒤에 있는 타우로드를 봤다.


“이번 일의 책임은 내가 진다. 지금은 조용히 이 녀석의 지시를 따라 주게.”


타우로드가 그렇게 말하면서 타츠미의 어깨를 두드린다.

의사들이 보기엔 나중에 귀족들한테서 무슨 불평을 들을 지가 무서운 것이리라.

신분이 높은 사람부터 치유를 하는 게 상식인 이 나라에서 신분을 불문하고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부터 치유를 하면, 그 행위에 화가 치민 귀족들이 불평을 내뱉을 건 명백하다.

하지만 왕국의 기사대장인 타우로드가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면야, 의사들도 타츠미의 지시에 따르는 것에 대해 이의는 없다.

그들도 구할 수 있는 목숨은 구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군요……먼저 치유 마법을 걸지 않으면 위험한 사람은 잘 보이는 곳에 커다랗게 「○」를 적어 주세요. 긴급성은 낮지만 상처가 심한 사람한테는 「△」를,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람한테는 「#」을 부탁드립니다.”


타츠미는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땅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한다.


“뭘 적을 만한 물건은 있으신가요? 없으면 타우로드 공한테 곧바로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만?”

“의사라는 직업상, 펜이나 잉크는 늘 들고 다니고 있어.”


의사 중 한 사람이 손에 쥔 가방을 툭 하고 치자, 다른 의사들도 동의했다. 그리고 곧장 부상자들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칼세를 포함한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 분들은 「○」가 적힌 부상자부터 우선적으로 치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칼세드니아가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자, 다른 마법사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매형은 부하 분들께 명령을 내려서 부상자를 같은 곳으로 모아 주세요. 가능하다면 같은 표시가 적혀있는 사람들이 모이도록요. 그러는 편이 마법사들이 치유하기 편하겠죠. 다만, 의식이 없는 사람이나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억지로 옮기지 마세요. 마찬가지로 머리를 다친 부상자도 섣불리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않도록 해 주시고요.”

“알겠다.”


타우로드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타츠미의 지시대로 부하를 동원시켰다.




그 뒤, 타츠미는 타우로드와 함께 훈련장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부상자에 대한 대응에 세세한 지시를 내렸다.

타츠미도 결코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트리아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

자신한테 날아오는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대답을 모색한다.

계속 그의 옆에 있는 타우로드나, 때때로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와 주는 칼세드니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타츠미는 필사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타츠미가 이것저것 상황에 대응하고 있자, 한 기사가 타츠미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아, 당신은…….”


타츠미는 그게 누군지 바로 눈치 챘다. 그는 방금 전 타츠미한테 시비를 걸었던 기사였다.


“신관 공……방금 전엔 미안했군.”


기사는 타츠미의 옆까지 다가오더니,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 팔을 치료해준 의사한테서 귀공이 가진 치유에 대한 생각을 들었네.”


기사는 붕대가 감싸여 있는 왼팔을 들어 보이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경상이었던 모양이라 붕대를 감는 정도로 끝난 모양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귀공의 생각이 올바르더군. 《성녀》 공이나 다른 마법사들도 무한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니, 무한한 마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이번엔 타츠미가 쓴웃음을 지을 차례였다. 그는 실질적으로 무한한 마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나는 귀족 출신이라는 신분에 기대고 있던 모양이다. 나 자신은 늘 귀족이 아니라 기사라고 여기고 있었다만…….”


듣자 하니, 이 사람은 어떤 귀족의 셋째 아들인 모양이다. 그는 스스로 가문을 이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군대에 들어와 기사가 됐다던가.


“정말로 미안하네. 그 사과의 대한 보답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말해줬으면 하는군.”

“부상 쪽은 괜찮으신가요?”

“그래, 딱히 별 지장 없다네. 오히려 지금은 이 정도 상처로 《성녀》 공의 치유 마법에 기대려고 했다는 점이 부끄러울 정도지.”


기사는 다친 팔을 툭 하고 두드리면서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양 않고…….”

“그래, 말하는 게 늦었다만, 나는 가일 유토리로스라고 하네. 마음 편하게 가일이라 불러줬으면 좋겠군.”

“저는 타츠미 야마가타입니다. 저야말로, 타츠미라고 불러 주세요.”


타츠미와 가일은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서방님!!”


타츠미와 가일이 악수를 나누고 있자, 칼세드니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바로 와 주세요!! 서방님의 힘이 필요해요!!”

“알겠어!! 안내해 줘!”


타츠미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칼세드니아가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상, 그는 그 말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타츠미와 칼세드니아가 함께 달려 나가자, 곧장 가일도 두 사람을 따라가 달려갔다.

칼세드니아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통나무 한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통나무 옆에 있는 땅이 검게 물들어 있으며, 그 축축한 땅에 한 병사가 쓰러져 있다.


현장에 도착한 타츠미가 확인을 해 보니, 그 병사의 오른쪽 넓적다리에 직경 10cm 정도 되는 두께의 말뚝이 꽂혀 있었다.

운 나쁘게도 이 병사는 통나무가 무너졌을 때, 우연히 그곳에 뒀던, 통나무를 땅에 고정하기 위한 말뚝 위에 넘어진 모양이다.

게다가 통나무가 무너졌을 때 머리쪽에도 부상을 입은 모양이라 현재는 의식이 없다.


“아마, 통나무가 무너졌을 때 도망치려 하다가 말뚝 끝부분을 밟아버렸던 거겠죠. 그것 때문에 말뚝의 뾰족한 부분이 위쪽으로 향해졌는데, 그 위로 넘어진 거라고 봐요.”


비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칼세드니아가 타츠미한테 설명한다. 

잘 살펴보니, 머리쪽에 입은 부상 같은 건 이미 치유를 받은 모양이라 출혈이 멈춰있다. 남은 건 다리에 꽂힌 말뚝뿐.


“……하지만, 이대로 말뚝을 뽑아버렸다간……아마, 순식간에 피가 빠져나가 이 병사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타츠미와 칼세드니아의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가일이 역시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 이 말뚝을 뽑은 순간에 제가 치유 마법을 행사하겠어요. 그렇게 하면 출혈은 최소한으로 억누를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렇게 두꺼운 말뚝이다. 그렇게 간단히는 뽑을 수 없을 텐데…….”


직경 10cm 정도 되는 말뚝이 완전히 병사의 넓적다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외과 수술 같은 걸 이용하면 뽑을 수 있을 테지만, 이 세계에 그런 고도 기술의 외과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럴 경우엔 힘을 써서 뽑아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병사한테도 상당한 부담이 걸리리라.


“바로 사람을 모아오지.”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달려 나가려 한 가일을 타츠미가 제지한다.

그 타츠미는 가일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저 칼세드니아를 바라본다.

타츠미의 시선을 보고 칼세드니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병사 옆에 무릎을 꿇더니, 신관복이 피로 더러워지는 걸 신경도 쓰지 않고 주문 영창을 시작했다.

타츠미도 그녀를 따라 병사 옆에 쭈그려 앉더니, 마력을 해방할 준비를 한다.


“이, 이봐……타츠미도 《성녀》 공도 대체 뭘……?”


그저 한 사람, 가일만이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당황해 하고 있다.

칼세드니아의 영창이 끝나기 직전, 그녀는 타츠미를 힐끗 쳐다봤다.

그걸 기다리고 있던 타츠미는 준비하고 있던 마력을 단숨에 개방시켜, 병사의 넓적다리에 꽂혀있던 말뚝을 만진다.

넓적다리에 꽂혀있던 말뚝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엔 타츠미의 근처에 있는 땅바닥에 나타나 텅 하는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뭐……?”


눈앞에서 일어난 현상을 보고 가일이 무심코 눈을 둥그렇게 뜬다.

말뚝이 사라진 순간, 넓적다리에 뚫린 상처 부위에서 순식간에 피가 뿜어져 나와, 옆에 있던 타츠미와 칼세드니아의 얼굴이나 몸을 더럽힌다. 하지만 동시에 전개된 칼세드니아의 치유 마법이 순식간에 그 상처를 아물게 한다.


점점 아물어 가는 상처. 그에 맞춰 출혈도 점차 잦아들고, 칼세드니아가 예상한 대로 출혈은 최소한으로 억누를 수 있던 모양이다.

물론, 치유 마법은 상처를 아물게 했을 뿐만이 아니라, 뼈나 근육 같은 결손도 회복시키고 있다.

칼세드니아는 다시 한 번 병사의 상태를 확인한다.

의식은 잃긴 했지만, 이제 목숨에 별 지장은 없으리라.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칼세드니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타츠미를 바라본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걸 깨달은 타츠미도 또한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뭐……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멍하니 중얼거리는 가일.

그의 머리는 눈앞에서 일어난 현상을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상처가 아문 건 이해할 수 있다. 치유 마법을 행사한 게 그 유명한 《성녀》인 것이다. 그녀라면 이것보다 심한 부상이라도 순식간에 치유시킬 수 있으리라.

하지만 병사의 넓적다리에 꽂혀 있던 말뚝이 순식간에 사라졌던 건 그의 이해 범주 밖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타츠미와 칼세드니아를 바라보고 있던 가일.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그는 최근 듣게 됐던 어떤 소문을 떠올렸다.

그것은 성의 아래쪽에 위치한 도시에서 나타났다는 <하늘> 마법사의 소문.

지금까지 동화나 전설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늘>의 마법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일은 그 소문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늘>의 마법사 따위, 동화 속에서만 나오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서 일어난 현상이야말로 그 동화속에서 곧잘 등장하는 <하늘>의 대표적인 마법 그 자체가 아닌가.

동화 속에 등장하는 <하늘>의 마법사는 멀리 있는 걸 손 안으로 끌어당겨 오거나, 반대로 손 안에 있는 걸 단숨에 먼 곳으로 보내거나, 그리고 거대한 암석을 하늘로 날려버리기도 한다.

가일의 눈앞에서 타츠미가 사용했던 마법이야말로, 그의 눈에는 <하늘>의 마법 그 자체로 보였다.

그리고 소문에 따르면 최근 나타났다고 하는 <하늘>의 마법사는 흑발흑안에 호박색 피부를 한, 먼 이국의 청년이라고 알려져 있었던 걸 떠올린다.


“……지, 지금 그건 <하늘>의 마법……? 그, 그럼 타츠미가……소문의 <하늘> 마법사……?”


가일은 멍하니 자리에 서서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