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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 4장 제 4화『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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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현재 일본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되고 있는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의 번역입니다. 


원본 링크는 여기


4장 제 4화 『사고』


“사실은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들어줄 수 없겠니?”


어느 날, 크와로트 공작가의 선대부인인 엘리시아 크와로트가 갑자기 칼세드니아를 불러냈다.

혹시 또 무슨 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고 서둘러 칼세드니아가 달려가 보니,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건 방금과 같은 선대부인의 말.

선대부인이 병에 걸린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안심하는 한편, 오늘 이곳에 그녀를 불러낸 「부탁」이라는 것에 칼세드니아는 살짝 경계심을 품었다.


지금까지 선대부인이 그녀를 불러내서 「부탁」을 할 때는 칼세드니아한테 있어서 별로 좋은 부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혈연이 있는 남자와 그녀를 만나게 하거나.

아는 귀족의 아들과 맞선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을 하거나.

예전엔 이것저것 맞선 상대를 들고 와 칼세드니아한테 물어보던 엘리시아.


그것들은 전부 결혼 적령기 후반에 걸쳐 있는 칼세드니아를 걱정해서 가져온 것이었지만, 정작 본인이 보기엔 역시 당황스러운 얘기였다.

하지만 엘리시아도 타츠미를 인정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맞선을 추천하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맞선 종류는 아니리라.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칼세드니아는 엘리시아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를 기다렸다.


“사실은 말이지, 내가 아는 사람의 딸이, 어떤 연회에 나가게 돼서 옷을 새로 주문하려고 했었는데……치수를 재기 직전에 그 애의 몸 상태가 나빠져 버렸거든.”


뺨에 손을 갖다 대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는 엘리시아.


“일단, 그 연회 전까지는 몸이 괜찮아질 것 같아서 안심이긴 한데, 제일 중요한 치수 재는 게 늦을 것 같단 말이야. 거기서――”


엘리시아 선대부인이 힐끔 하고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칼세드니아를 바라봤다.


“알겠어요. 제가 그 분의 병을 낫게 해 드리면 되는 거군요?”

“아니, 그게 아냐. 네가 그 사람 대신 치수를 쟀으면 하는 거야.”

“네? 제가 치수를 잰단……말인가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몇 번이나 깜빡깜빡 거리는 칼세드니아.


“그래. 그 애랑 너는 비슷한 키에 비슷한 체형이거든. 그러니까, 네가 그 애 대신 치수를 재 줄 수 없겠나 하고 부탁하고 싶은 거야.”

“그, 그건 상관 없는데요……제가 그 분 대신 치수를 재는 것보다, 그 분을 마법으로 치유하는 편이 더 낫지 않나요?”

“그, 그건 그런데, 이미 양장점 직원들까지 다 불러놨거든. 그 사람들도 바쁜데 일부러 이 집까지 왔으니까, 여기선 네가 대신 치수를 재 줄 수 없겠니?”


뭔가 납득이 잘 가진 않았지만, 다름아닌 엘리시아의 부탁이다. 칼세드니아는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부탁할게?”

“지, 지금부터 말인가요!?”


깜짝 놀라는 칼세드니아를 제쳐 두고, 엘리시아는 짝짝 하고 손뼉을 몇 번 쳤다.

그 손뼉 소리에 응하듯이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엘리시아의 허가를 얻고 몇 명의 여자들이 천이나 바늘 같은 재봉 도구를 들고 방 안으로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여자――양장점의 직원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칼세드니아의 옷을 벗겨낸다.

그리고 속옷 차림이 된 그녀한테 이것저것 다양한 종류의 색깔이나 천을 갖다 대곤, 엘리시아와 함께 상담을 해 본다.


“칼세드니아 님의 머리카락 색이라면, 이 색을 쓴 천이 더 돋보이지 않을까요?”

“그러네. 확실히 이 색이 좋은걸.”

“그, 그게요―……제 머리카락이랑 맞춰도 소용없지 않나요……?”

“아, 아아, 괘, 괜찮단다. 그 애도 너랑 매우 비슷한 머리카락 색깔을 하고 있으니까.”

“그, 그런 건가요……?”


역시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그대로 기세에 휩쓸리는 칼세드니아.

그 뒤에도 직원들은 순조롭게 작업을 진행했다.

옷감 색깔을 정하고, 장식품을 선택한 다음, 세세한 디자인을 정하고.

마치 자신의 옷을 만드는 것 같다고 칼세드니아가 생각할 정도로 직원들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까지 치수를 재고, 모든 작업을 그녀에 맞춰 행동했다.


“칼세드니아 님의 피부는 정말로 매끈하시네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정말로요. 색깔도 하얗고……어머나?”


직원 중 한 사람이, 칼세드니아의 눈결 같은 피부――보드라운 가슴의 부품 일부――에, 울혈 때문에 생긴 걸로 보이는 흔적이 몇 개나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를 순식간에 깨닫고, 그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다.


“시, 실례했습니다……!”


그 직원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일부러 그 울혈을 보지 않으려고 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그 뒤에서 힐끔힐끔, 몇 번이나 그 울혈 흔적을 훔쳐보고 있었다.

칼세드니아도 그 직원한테 지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어머, 어머. 아무래도 타츠미랑은 사이가 좋은 모양이구나.”


엘리시아가 그런 칼세드니아의 모습을 싱글싱글 미소 지으면서 바라봤다.

평소 친근히 지내는 엘리시아가 자신을 놀리자, 칼세드니아는 더더욱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하지만 엘리시아를 포함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칼세드니아의 그 표정에 기뻐 보이는 미소가 번져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




칼세드니아가 그런 행복한 수치심에 몸을 달구고 있자, 갑자기 누군가 방의 문을 두드렸다.


“대부인. 서바이브 신전에서, 야마가타 상급 신관이 왔습니다.”

“어머, 타츠미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네, 아무래도 시급한 용건인 모양입니다. 크리소프레즈 예하님께서, 부인을 당장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하인의 말.


“그래. 칼세 쪽은 어떻게 됐니?”

“네. 작업은 전부 끝냈습니다.”


엘리시아의 질문을 들은 직원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한다.

그 뒤에선 방금 전까지 어딘가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던 칼세드니아가 서둘러 신관복을 입고 있는 참이었다.


그때까지 짓고 있던 표정과는 정반대로, 칼세드니아는 명백히 기뻐 보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평소에도 같이 살고 있는 주제에 타츠미를 만나는 게 그렇게 기쁜 건가하고 내심 질려 하면서도, 엘리시아는 타츠미를 이 방으로 들어오도록 하인한테 알렸다.


얼마 안 있어 신관복 차림의 타츠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타츠미의 모습을 본 순간, 칼세드니아는 그 아름다운 용모를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확 빛냈다. 하지만 타츠미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고, 칼세드니아도 얼굴을 굳혔다.


“실례하겠습니다, 엘리시아 씨.”

“어서 오렴, 타츠미. 오랜만이구나?”

“네. 그간 소식도 제대로 못 드려 죄송합니다. 오늘은 급한 일이 있어서…….”


방으로 들어온 타츠미는 엘리시아와 짧게 인사를 나누곤, 진지한 표정으로 칼세드니아를 바라봤다.


“칼세. 궁정 쪽에서 사고가 일어난 모양이야.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는 것 같아서, 쥬젯페 씨가 지금 당장 궁정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어.”


사고가 일어났다는 걸 듣고, 칼세드니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장 표정을 굳히곤 알겠다고 타츠미한테 대답했다.


“대부인, 정말 죄송합니다만…….”

“그래, 나도 듣고 있었어. 아무래도 커다란 사고인 것 같구나.”


궁정에선 기사나 병사들이 훈련 중에 부상을 입는 경우는 종종 있다.

궁정에는 의사가 늘 머무르고 있지만, 그 의사들이 다들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매일 신전에서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신관이 왕궁으로 간다. 오늘도 서바이브 신전에서 간 건 아닐 테지만,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왕궁에 있을 터다.

그런데도 다른 치유 마법사를 동원한다는 소리는, 그만큼 커다란 사고라는 것이리라.


“바로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아뇨, 제가 칼세랑 같이 가는 편이 빠르니까요.”


타츠미는 엘리시아한테 한 번 절을 하더니, 바로 옆에 와 있던 칼세드니아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다.

처음으로 타츠미의 《순간이동》을 본 엘리시아나 양장점 직원들은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타츠미의 《순간이동》…….”


엘리시아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공중을 맴돌고 있는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는 단단히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엘리시아가 아주 잠깐 눈을 깜빡인 사이에 다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마차 같은 것보다는 빠르네. 나도 궁정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난 걵, 확인해 두도록 해야겠어.”


엘리시아는 궁정에서 일어난 사고에 관해 조사해 오도록 하인한테 명령했다.

그 뒤, 방구석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을 향해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당신들은 이제부터 힘 좀 쓰셔야겠어요? 어찌 됐건, 신년제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귓가에서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빠져나간다.

일단 궁정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의 높이로 올라간 타츠미와 칼세드니아는 그 바로 아래에 있는 왕궁으로 떨어져 가면서 그 모습을 살펴보고 있었다.

귓가에서 울려대는 바람소리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타츠미는 품 안에 있는 칼세드니아의 귓가에 입을 갖다 댄다.


“나는 궁정에 가 본 적이 없어. 칼세, 넌 궁정을 잘 알아?”

“네. 치유 담당으로 궁정에는 몇 번인가 들어가 본 적이 있어요. 물론, 중요한 구획에는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요.”


치유 역할의 신관은 할일이 없으면 대기실에서 대기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칼세드니아도 궁정에 관한 지식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사고는 어디서 일어난 걸까요?”

“쥬젯페 씨는 기승 창 시합장이라고 하셨는데…….”


하늘 위에서 궁정에 있는 땅으로 떨어져 가면서, 타츠미는 궁정 곳곳에 시선을 돌려봤다.

하지만 궁정에 관한 지식이 없는 타츠미로써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장소를 찾아냈기 때문에,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면서 칼세드니아한테 물어봤다.


“저기에 사람이 모여있는데. 저기가 아닐까?”

“네, 저기가 훈련장이에요. 매년 기승 창 시합은 훈련장에서 할 테니까 저기게 맞겠죠.”


무서운 스피드로 낙하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츠미는 다시 칼세드니아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집어넣곤, 그대로 황금색으로 빛나는 마력을 해방시켰다.





역시 사고는 훈련장에서 일어났었다.

코앞에 다가온 신년제. 그 축제의 행사 중 하나로써 매년 개최되는 게 기승 창 시합이다.

시합에 출장할 수 있는 건 왕족이나 귀족, 혹은 기사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한정되지만, 그 화려한 시합은 서민들한테도 인기가 있다.


매년 시합장에는 왕후귀족 말고도, 수많은 서민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귀족들한테는 제대로 된 관람석이 준비되지만, 서민한테는 그런 게 없다.

서민들은 서서 보거나, 기껏해야 통나무를 몇 겹 쌓아올린 즉석 객석에서 시합을 관람하게 된다.

그 즉석 객석을 쌓고 있는 도중, 사고가 일어난 모양이다.

쌓아올리고 있던 통나무가 무너져, 통나무 위나 근처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하급 병사나 사람들이 휘말린 것이다.


통나무라 하더라도, 하나하나가 길고 무게도 있다.

몇 층으로 된 객석을 쌓아올리고 있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높이도 상당히 있었고, 거기서 떨어진 나무에 얻어맞아 몸 곳곳의 뼈가 부러진 사람도 있다.

무너진 통나무 밑에 깔려있는 사람도 있고, 통나무를 쌓아올리기 위한 재료 때문에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다.


기사나 병사, 그리고 궁정에 와 있던 신관들이 각자 구조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다들 제각각 따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은 매우 혼잡스러웠다.

타츠미와 칼세드니아가 현장에 도착한 건 바로 그때.

땅 위로 전이한 타츠미는 현장에서 솟구치는 고함 소리와 절박한 분위기에 한 순간 압도됐지만, 칼세드니아의 손을 이끌고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서바이브 신전에서 온 사람입니다! 구조를 도우러 왔습니다!”

“서바이브 신전의 칼세드니아 크리소프레즈입니다! 곧바로 부상 치유를 하겠습니다!”


《성녀》라는 이명은 궁정의 기사나 병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칼세드니아가 치유를 맡을 땐 어째선지 훈련 중의 부상자가 늘어난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다.

그 《성녀》가 자신들을 도우러 왔다는 걸 깨닫고, 부상을 입은 병사들 사이에서 안도의 분위기가 퍼져나온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수많은 부상자들이 밀려들어왔다.





“서바이브 신전의 칼세드니아 크리소프레즈입니다! 곧바로 부상 치유를 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칼세드니아가 그렇게 말했을 때, 타츠미는 깜짝 놀라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성녀》로써 유명한 그녀가 치유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부상인이라면 누구나 다 그걸 바라리라. 그건 타츠미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마력도 무한하진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지금 그야말로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부상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러한 부상자를 중점적으로 치유해야 한다.


“기, 기다려, 칼세! 그래선 안 돼――”


하지만 타츠미의 저지는 너무 늦었다. 칼세드니아가 있다는 걸 눈치 챈 부상자들이 점 칼세드니아 쪽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타츠미는 서둘러 칼세드니아와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기다려 주세요!! 칼세드니아의 치유 마법은 부상이 심한 사람부터 우선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칼세드니아한테 밀려오는 부상자들이 멈춰 선다. 그리고 《성녀》와 자신들 사이를 가로막은 낯선 흑발흑안의 청년을 수상쩍다는 시선으로 가만히 바라봤다.


“뭐냐, 네 녀석은? 보아하니 서바이브 신의 신관……그것도 평범한 상급 신관인 모양이다만……상급 신관 따위가 무슨 권리가 있어서 《성녀》 공의 치유 행위를 방해하려 하지?”


입고 있는 신관복과 성인을 보고 타츠미의 신분을 가늠한 기사 같은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팔에 부상을 입은 모양인지, 추욱 늘어트린 손가락 끝에서 피가 방울져 떨어지고 있다.


“네놈의 지시는 받지 않겠다. 자, 《성녀》공. 얼른 치유 마법을 부탁드립니다.”


타츠미를 밀어 젖히듯이 그 기사가 칼세드니아 앞에 섰다.

하지만 칼세드니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타츠미와 기사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만 있을 뿐, 치유 마법을 쓰려고 하질 않았다.

그녀는 현재 치유를 하고 싶긴 하지만 타츠미의 말을 무시하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칼세드니아가 치유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사실에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다시 타츠미가 기사와 칼세드니아 사이로 끼어들었다.


“기다려 주세요! 칼세……가 아니라, 크리소프레즈 예하의 마력도 유한합니다. 부상이 심한 사람부터 우선해서 치유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네놈의 지시는 받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치유라면 근처에 있는 사람부터 차례대로 하면 되지 않나!”


기사가 다치지 않은 쪽 팔로 타츠미를 밀어 젖히려고 한다.

하지만 그 팔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휘둘렀고, 그 기사는 자세를 무너트려 휘청거렸다. 타츠미가 살짝 전이를 사용해서 기사의 팔을 피했기 때문이다.


“우왓!? 네놈……!”


타츠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아니면 타츠미가 자신을 피해서 짜증이 난 건가. 기사는 명백히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이 나를 모욕할 생각인가!?”


허리에 매단 검에 손을 뻗더니, 당장에라도 뽑아 들 것만 같은 기색을 보이는 기사.

그리고 타츠미한테 적의를 보내고 있는 건 그 기사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칼세드니아가 치유해주기를 원해, 이곳에 모여있는 사람들 모두가 치유 행위를 방해하는――그들의 시점에서 보기엔 그렇게 보이는――타츠미를 많건 적건 불만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당신을 모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방금 전에도 말씀드린 대로, 크리소프레즈 예하의 마력도 무한하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시끄럽다!! 네놈 따위의 지시는 듣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나!?”


차릉 하는 가벼운 금속움. 드디어 그 기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아니, 뽑아 들려고 했다.


“너희들, 이 긴급사태에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차분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던 건, 그야말로 기사가 검을 뽑아들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