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현재 일본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되고 있는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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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공기를 가르고 은빛 섬광이 내달린다.
그가 천천히 품 안에 넣었던 손을 다시 뺐을 때, 그 손에는 날카로운 빛을 띈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은빛 칼날이 태양광을 반사하고 번쩍 하고 빛난다.
그 빛을 길게 남기면서 지근거리에서 갑자기 날아든 참격을 칼세드니아가 가볍게 피했다.
타탁, 하는 가벼운 발놀림으로 그한테서 거리를 둔다. 그것과 동시에 정원에 있던 신자 여자 한 명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대낮 신전의 정원에서 갑자기 단검이 휘둘러진 것이다. 그걸 목격한 신자가 놀라서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다.
“여러분!! 얼른 여기서 나가 주세요!!”
날카로운 빛을 쏘아내는 단검을 쥐고 두 눈동자에 붉은 광채가 깃든 그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칼세드니아는 주변에 있는 신자들한테 도망칠 것을 재촉했다.
맨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칼세드니아를 바라보고 있던 신자들도 눈앞에서 일어난 소행을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쳐갔다.
신자들이 이렇게 많이 소동을 피우면 머지않아 이 신전의 신관기사들도 달려올 것이다.
칼세드니아는 신관 기사들이 올 때까지 모든 걸 정리할 생각이었다.
눈앞에 있는 그에게 씌인 <마>. 그것만 퇴치한다면 그는 원래대로 온화한――어렸을 적부터 칼세드니아가 잘 아는 인물로 돌아와 줄 테니까.
<마> 가 씌어서 끌어올려진 신체 능력으로 날카롭게 휘둘러지는 단검을 간단히 피하면서 칼세드니아는 그 아리따운 입술로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실어 온 물을 전부 욕장의 욕탕에 쏟아 부은 타츠미는 다시 물을 옮기기 위해서 욕장에서 나왔다.
타츠미는 뒤뜰에 있는 우물을 향해서 걸어 나갔을 때, 자신이 가는 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걸 깨달았다.
“어라, 몰가 씨?”
그 인물――<<자유 기사>> 몰가나이크는 뭔가 궁지에 몰린 듯한 표정으로 지긋이 타츠미를 바라봤다.
“타츠미 공. 실례인 걸 알면서 물어보지. 그러니까 가능하면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하는데. 자네는……자네는 대체 누구지?”
“네? 저……말인가요?”
자신을 가리키면서 멍청한 표정을 짓는 타츠미. 누구나 다 갑자기 자기가 누구냐는 소리를 들으면 그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크리소프레즈 예하가 굳이 칼세한테 마중을 보냈다는 걸 듣고 자네는 타국에서도 신분이 높은 가문의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하지만 자네는……요 며칠간, 자네를 슬며시 살펴보고 있었지만……보통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잡일을 불평도 하지 않고 하고 있었지. 확실히 신전으로 몸을 담근 시점에서 출신 같은 건 관계없는 걸로 흔히들 알려져 있지만, 신전도 꼭 그렇게 하라고는 할 수 없는 장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
신전은 나라의 통치 같은 세속에서 격리된 조직이긴 하지만, 몰가나이크가 말하는 것처럼 그건 겉치레에 불과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왕족이나 귀족 같은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로 신전에 자리를 잡아 신관이 됐을 경우, 대부분은 맨 처음부터 어느 정도의 지위――대제나 사제 부근――를 받게 된다. 때문에 귀족 출신의 신관은 하급 신관이 하는 심부름은 거의 하지 않는다.
맨 처음에는 타츠미가 다른 나라의 귀족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몰가나이크였지만, 그 타츠미가 불평도 하지 않고 심부름을 하고 있는 걸 보고 그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가령 자네가 서민 출신이라고 한다면……이렇게 말하는 건 미안하지만, 이번엔 크리소프레즈 예하께서 자네한테 눈독을 들이는 이유를 모르겠군. 아무래도 자네는 뛰어난 마법사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야.”
몰가나이크도 또한 마법사다. 지금의 그의 눈에는 타츠미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미.약.한. 마.력.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의 마력량으로는 초급 마법을 발동시키는 게 고작일 것이다.
“나도 돌려 말하는 건 특기가 아니라서 말이지.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물어보지. 타츠미 공, 자네는 대체 누군가? 그리고……그리고, 칼세하고는 대체 어떤 관계인 거지?”
진지한 적갈색 눈동자가 똑바로 타츠미를 쏘아본다.
그 올곧은 시선 안에 담겨있는 <<자유 기사>> 가 <<성녀>> 한테 품고 있는 뜨거운 감정. 타츠미는 그걸 확실히 느꼈다.
그래서.
그래서, 타츠미는 솔직하게 대답하려고 결심을 했다. 그녀가 자신한테 있어서 소중한, 단 한 명의 존재라는 것을.
하지만, 결과를 말하자면 그걸 몰가나이크한테 알리지 못했다.
타츠미가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을 때, 신전 통로에서 탁탁탁탁 하고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무장한 한 신관――신관 기사가 몰가나이크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모, 몰가나이크 님!! 크,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지?”
몰가나이크도 또한 타츠미한테 보내고 있던 것과는 다른 날카로움이 담긴 시선을 그 신관 기사한테 보냈다.
“현재, 신전 정원에서 <마> 에 씌인 사람이 날뛰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뭐라고!!?”
번쩍, 하고 <<자유 기사>>의 두 눈동자에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빛이 깃든다. 말하자면『일상』에서『전시(戦時)』로. 그 변화는 전투와 전혀 연이 없는 타츠미조차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누구지? 누가 <마>에 씌였지? 신전에 예배를 하러 온 신자인가?”
“그, 그것이……<마> 에 씌인 건……크리소프레즈 최고 사제 님의 보좌관이신……발디오 님이십니다!!”
달려드는 은빛 칼날을 칼세드니아가 냉정하게 피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주문 영창을 이어간다. 마법 행사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집중이 흐트러진 것만으로도 영창에 실패하지만 그녀 정도로 숙달이 되어 있으면 정확한 영창을 유지하면서도 회피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퇴마사로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칼세드니아다. 초보가 휘두르는 단검을 회피하는 건 간단하다.
그녀는 이른바 후위 지원이긴 하지만, 몸을 지키기 위한 체술 정도는 체득하고 있다. 몰가나이크와 조를 짜온 칼세드니아는 서바이브 신전에서도 손꼽히는 실력과 실적을 가진 퇴마사인 것이다.
다시 가벼운 발놀림으로 뒤쪽으로 물러난 칼세드니아는 괴아한 붉은 빛이 깃든 그――발디오의 눈동자를 포착했다.
발디오하고 칼세드니아가 알고 지낸 시간은 길다.
칼세드니아가 처음으로 그하고 만났던 건 쥬젯페한테 거둬들여졌을 때다. 당시, 쥬젯페의 보좌관 견습이었던 발디오는 어린 칼세드니아를 곧잘 돌봐줬던 것이다.
십대 중반에 최고 사제의 보좌관 견습으로 선발된 발디오는 장래가 유망한 신관 중 한 사람이다.
평민 출신이면서 매일 노력을 거듭해 현재 고위 사제라고 하는 지위와, 최고 사제의 보좌관이라고 하는 요직을 거둬낸 성실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발디오가 <마> 에 씌일 줄이야. 지금 그의 붉은 눈동자를 보고 있어도 칼세드니아는 거의 믿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줘요, 발디오 님. 바로 당신한테 씌인 <마>를 퇴치할게요.”
루비 같은 두 눈동자에 결의의 빛을 띄운 칼세드니아는 이어가고 있던 영창의 마지막 한 구절을 영창했다.
주문이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부르르 하고 전율했다.
아니, 공기가 아니다.
바람도 없는데도 후들거리고 있는 건 신전 뜰 여기저기에 심어져 있는 나무나 잡초 같은 것들이다.
잡초가 죽죽 성장하더니, 그 녹색 촉수를 발디오한테 뻗었다.
나무들이 살랑살랑 가지와 잎을 흔들며 우득우득 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가지를 뻗는다.
잡초나 나뭇가지는 발디오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칼세드니아가 행사한 마법은 <나무> 계통의 <<수목 포박>>. 문자 그대로 식물의 가지나 풀을 이용해서 표적의 움직임을 봉하는 마법이다.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잡초나 나뭇가지를 발디오는 손에 쥔 단검으로 잘라낸다.
하지만, 아무리 발디오가 잘라내도 잡초나 가지는 점점 늘어난다.
<마> 가 빙의됨으로서 그의 신체 능력도 올라가 있지만 전투 훈련을 받지 않은 그의 신체 능력이 올라가 봤자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뒤에서 쇄도하는 잡초나 나뭇가지는 조금씩 그의 몸을 붙잡더니 결국엔 그의 몸을 완전히 포박하고 말았다.
발디오의 움직임이 봉해진 걸 확인한 칼세드니아는 다시 주문 영창을 개시한다.
다음으로 그녀가 영창하는 건 <빛> <성> 계통의 <<퇴마술>>. 빙의한 <마>를 표적의 육체에서 벗겨내는 주문이다.
<<퇴마술>>은 표적이 움직이고 있을 경우 그 표적을 노리는 게 어렵다. 때문에 <<퇴마술>>을 행사할 때는 상대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막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평소라면. 몰가나이크와 조를 짜서 퇴마사로서 활동할 때라면 그 <<자유 기사>> 가 표적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막아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없는 지금 일단 다른 주문으로 발디오를 포박할 필요가 있었다.
풀과 나뭇가지에 붙잡힌 발디오는 포박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꺾는다. 하지만, 달라붙은 초목은 의외로 단단해서 힘을 넣어 몸을 움직여도 부러트릴 수가 없다.
그런 발디오를 지켜보면서 칼세드니아가 주문을 잇는다.
칼세드니아의 체내에서 점점 <성> 의 마력이 높아져 간다. 그걸 감지했을 것이다. 발디오는――아니, 발디오한테 빙의한 <마> 는,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 의 마력에서 도망치려고 필사적으로 포박을 떨쳐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칼세드니아가 <<퇴마술>>의 주문을 완성시키는 것과 동시에, 발디오의 발 밑에서 맑은 은색의 빛이 솟아올랐다.
“칼세가……?”
신관 기사의 보고를 듣고 그때까지 날카로웠던 몰가나이크의 표정이 약간 풀어진다.
그리고, <<자유 기사>>와는 정반대로 타츠미의 안색이 단숨에 파랗게 질렸다.
“치, 치코가 날붙이를 든 남자하고 대치하고 있다고!?”
한 순간, 타츠미의 뇌리에 피투성이로 땅에 쓰러진 칼세드니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타랑,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타츠미가 들고 있던 물 운반용 통과 멜대가 신전 통로로 떨어진다.
무심코 통과 멜대를 던져버린 타츠미는 그대로 달려가려고 했다. 물론, 가는 곳은 칼세드니아가 있는 신전 정원이다.
하지만, 그의 등을 향해 몰가나이크의 냉정한 목소리가 발을 멈추게 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타츠미 공. <마> 에 빙의됐다고는 해도 기초적인 전투 훈련밖에 경험이 없는 발디오 님 상대로 칼세가 질 리가 없지.”
“하, 하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게 있잖아!?”
무심코 소리를 내지르는 타츠미한테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몰가나이크는 말을 이었다.
“물론 구하러 가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구하러 간다 하더라도, 아무런 장비도 없이 뭘 할 생각인 거지, 타츠미 공은?”
그 말을 듣고 타츠미가 정신을 차렸다.
몰가나이크는 신관 전사인 모양인지, 판금제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긴 검을 걸치고 있다. 그에 비해, 타츠미는 매우 평범한 신관복 하나뿐. 당연하게도 타츠미한테 격투기 경험 같은 건 전혀 없다.
“최소한 몸을 지키 위한 무기 정도는 들고 가야 한다고.”
몰가나이크는 보고를 하러 온 신관 기사한테서 갖고 있던 짧은 창을 빌리고는 그걸 타츠미한테 던져 줬다.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들을 생각은 없겠지? 그렇다면 자기 몸 정도는 자기가 지키도록.”
날카로운 광채를 보이는 창날을 보고 약간 겁에 질리면서도, 타츠미는 몰가나이크의 말에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한 파마의 은색 광채가 점점 흐릿해진다.
이윽과 완전히 광채가 사라졌을 때, 그곳에서 발디오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멍하니 서 있었다.
칼세드니아는 주의 깊게 발디오를 살펴봤다.
그녀의 <<퇴마술>> 주문은 매우 강력하지만 그래도 항상 <<마>> 가 퇴마되는 건 아니다. <마> 의 힘이 예상외로 강할 때는 주문에 저항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수목 포박>>도 지속 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지금 발디오는 포박되어 있지 않다. 칼세드니아는 항상 다시 주문을 영창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신중하게 발디오하고 그의 주변 기색을 엿봤다.
칼세드니아의 감각으로 5분 정도 상태를 지켜보고는 발디오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후우 하고 어깨에서 힘을 뺐다.
“발디오 님? 괜찮나요?”
“카……칼세…….”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발디오의 시선이 칼세드니아한테 향해진다.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다. 하고 칼세드니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갑자기 발디오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도, 도망쳐, 칼세드니아!! 녀석은……<마>는……아직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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