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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제 15화 『마에 떨어지다』
“야, 타츠미.”
“왜 그래, 바스?”
타츠미는 우물에서 물이 담긴 통을 끌어올리고는 그 물을 자기가 가져온 물통으로 옮겨 담았다.
그리고 텅 빈 통을 우물 안으로 홱 하고 던졌다. 통이 물 안에 빠진 걸 확인하고 다시 통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그 타츠미 뒤에서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는 열심히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타츠미한테 물어봤다.
“왜 너는 이런 잡일을 하고 있는 거냐?”
“왜냐니……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잖아?”
오늘 타츠미와 바스한테 주어진 일은 우물에서 퍼올린 물을 옮기는 일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보가드한테 가자, 보가드는 타츠미를 보고 빙긋 웃으며 그한테 물 옮기기 작업을 건네줬다.
“어제 했던 걸 봐선 힘쓰는 일을 맡겨도 괜찮겠지?”
그렇게 말하는 보가드한테서 일하는 순서에 대해 설명을 들은 타츠미는 운반용 물통과 그 물통을 짊어 메기 위한 멜대를 받아들고 신전 뒤뜰에 있는 우물로 향했다.
바스는 가는 길에 만났다. 아무래도 바스도 오늘은 물 옮기기 당번인 듯하다.
“아니, 네 부인……아니, 부인이 될 사람 말이야, 상당히 돈 벌고 있지 않냐? 그러면 이렇게 힘든 잡일 같은 건 안 해도……애초에 네가 일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거 아니냐?”
“아니, 치코 혼자한테 일하게 해놓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다니……, 난 기둥서방이 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기둥서방?”
“아, 그렇구나. 이쪽 세계……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는 여자한테 일을 맡겨 두고 자기는 일도 하지 않는 남자를『기둥서방』이라고는 안 부르는구나?”
“어, 그런 호칭은 안 쓰는데. 확실히 여자를 일하게 해놓고 자기는 아무 것도 안 하는 남자는 이 나라에서도 차갑게 보는 사람이 많지만, 만약 그 여자가 마법사일 경우에는 달라. 마법사라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니까.”
바스한테 듣자하니, 이 나라에서는 마법사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고 한다.
예를 들면 촛불이나 부엌에 불을 붙이는 그런 작은 점화 마법이라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그 마법에 기대고 대가로 돈이나 일용품, 음식 같은 걸 두고 간다.
타츠미가 있던 세계처럼 라이터 같은 걸로 간단히 불을 피울 수 없는 이 세계에선 마법으로 불씨를 만들어내면 그것만으로도 희소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광구(光球)> 주문을 사용할 수 있으면 저녁에 큰 길거리 같은 곳에서『등불 장사』라고 해서 마법 등불을 팔고, 하룻밤 사이에 상당한 액수를 벌 수 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 인식되는 마법사의 입장을 들으면서 타츠미는 끌어올린 통의 물을 다시 가져온 수통에 촤르르륵 하고 옮겼다.
“그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지만……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치코를 돕고 싶거든.”
“그래? 뭐, 나는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아. 열심히 해서 부인을 도와라.”
“그래.”
바스의 격려의 말에 대답한 타츠미는 기합을 넣고 멜대를 멨다.
꽤 커다란 물통 두 개를 걸어둔 멜대는 당연히 꽤 무게가 나간다. 하지만, 어제 장작패기나 장작을 옮겼을 때와 마찬가지로 타츠미는 그렇게 심하게 무게감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몸에 생긴 일이면서 뭔가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타츠미는 부지런히 물을 옮겼다.
멀어져 가는 타츠미의 등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바스가 물을 끌어올리면서 문득 의문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왜 타츠미 저 녀석은 <<성녀>> 님을 부를 때『치코』라고 부르고 있는 거지?”
멜대에 멘 물통의 무게는 상당한 무게가 나갈 터다.
그런데 타츠미는 그 중량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마치 물통의 내용물이 비어있는 것처럼 타츠미는 가볍게 물을 옮긴다.
물을 옮기는 곳은 식당이나 욕장 같은 곳. 특히 욕장에는 대량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을 몇 번이나 옮겨야 한다.
타츠미나 바스하고 마찬가지로 물을 옮기는 하급 신관들이 힘겹게 물을 옮기는 중, 시원시원하게 몇 번이고 왕복하는 타츠미를 다른 하급 신관들이 놀라움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타츠미 자신도 어제도 그랬지만 자기 몸에 생긴 일이면서도 너무나 이상했다.
이상한 걸로 치자면 어제 일을 마친 뒤에 느낀 엄청난 피로감도 그렇다. 칼세드니아가 말하길 신참내기 마법사가 마법을 너무 사용했을 때하고 비슷하다는 것 같은데, 당연히 타츠미는 마법을 사용한 기억 같은 건 없다. 덧붙이자면, 애초에 타츠미는 마법을 사용하는 법 자체를 모른다.
맨 처음에는 이세계 보정에 따른 신체 능력의 상승인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이것저것 생각해 보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의문의 대답이 나올 리가 없다. 그렇게 판단한 타츠미는 물을 계속 옮기면서 다른 걸 생각했다.
“치코하고 같이 사는 거구나……가, 같이…….”
누구한테 들리지 않을 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타츠미.
그런 그의 뇌리에 떠오른 건 한 백금발의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
날씬한 몸매. 그러면서도 보기 좋게 살집이 있는 부드러운 몸. 매우 아름다운 용모. 종을 치는 것 같은 낭랑한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기억에 새겨져 있는 건 결코 크지 않으면서 충분히 거유라고 부를 수 있는 레벨의, 실로 그가 선호하는 사이즈의 가슴.
그게 제일 인상에 남아있는 건 역시 그가 그런 걸 제일 좋아하게 될 한창 때의 청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런 그녀와 타츠미는 곧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 사실 자체는 타츠미도 이해하고 있는 일――약간 주변의 기세에 휩쓸린 기분도 들지만――이지만, 켕기는 부분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쥬젯페를 시작으로 한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타츠미와 칼세드니아가 결혼한다고 여기고 있는 사실이 그의 마음속에서 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칼세드니아가 싫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No다.
그녀가 치코의 환생인 건 틀림없는 것 같고, 그렇게까지 헌신적으로 호의를 보여주는 상대를 싫어할 리가 없다.
게다가, 그녀의 용모는 타츠미의 취향에 직격하고 있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끌리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도 역시 켕기는 부분이 있는 건 갑자기 결혼이라는 사실이 눈앞에 닥쳤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 며칠 전까지 살아있을 기력조차 잃어버리고 있던 타츠미다. 그런 타츠미한테 결혼이니 뭐니 해도 솔직히 팍 하고 꽂히질 않는다.
게다가 그 결혼 상대는 전에 있던 세계라면 모를까, 지금 있는 세계에선 만난지 겨우 며칠밖에 안 지난 인물인 것이다.
갑자기 맞선을 강요 받고, 그 후 며칠 뒤에 결혼이 결정됐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다 지금 타츠미와 똑같은 심정이 될 게 틀림없다.
그렇지만 칼세드니아는 타츠미한테 있어서 이미 가족이다.
타츠미한테 남겨졌던 최후의 자그마한 가족이었던 치코. 그 치코의 환생이자, 전에 있던 세계에서 보여줬던 동작이나 분위기를 짙게 남기고 있는 칼세드니아는 설령 모습이 바뀌었다 해도 타츠미한테 있어서는 역시 가족이었던 치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그 외에도 있다.
그건 칼세드니아가 따지고 보면 이 세계에 있어서 톱 아이돌 같은 입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 도시는 물론이고 나라 안에 그 이름이 퍼져있는 성녀. 그 성녀가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남자하고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면 분명 여러 억측이나 엉뚱한 생각이 소문이 되어 퍼질 것이다.
그 사실이 나중에 그녀의 입장이나 평판을 나쁘게 만들진 않을까 하고 타츠미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으로선 나한테는 치코랑 쥬젯페 씨한테 기대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단 말이지…….”
이쪽 세계에서의 신분은 손에 넣었지만 그것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손에 넣은 신분도 쥬젯페의 은정으로 받은 것이다.
“…………뭐, 다름 아닌 치코 본인이 기뻐하는 것 같으니까……괜찮겠지?”
어제 그녀하고 같이 도시로 물건을 사러 나갔을 때 생활용품을 사는 칼세드니아는 정말로 기뻐 보였다.
만약 그게 어떠한 이유 때문에 한 연기였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타츠미는 여성불신에 빠지고 말 것이다.
칼세드니아 본인이 타츠미와 결혼할 것을 바라고 있지 않다면 얘기는 다르지만, 아무래도 그녀도 결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것 같고.
그렇다면 이제 깊이 생각하지 말고 가족인 치코랑 같이 살면서 때로는 그녀를 지탱하고, 때로는 그녀한테 지탱을 받으면서 살아가자. 『부부』도 또한 가족의 형태 중 하나니까.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가족을――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중한 가족을 지켜내자.
타츠미는 다시 한 번 그렇게 결심하고 멜대를 고쳐 메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욕탕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등을 어두운 그늘에서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때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평상시처럼 표정을 다소곳이 하고 조용히 신전 통로를 걸어가는 칼세드니아.
하지만 갑자기 잘 아는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칼세드니아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뒤를 돌아본 뒤에는 예상대로의 인물의 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때까지 엄격했던 그녀의 표정이 화악 풀어졌다.
“조금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만……지금, 시간은 괜찮으려나?”
“응, 상관없어.”
서서 얘기하는 것도 뭐하다면서 두 사람은 신전 정원으로 돌아갔다.
신전 정원에는 신자들의 사교장이기도 하다. 정원 이쪽저쪽에서 신자들이 각자 몇 명씩 모여서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곳에 <<성녀>> 로 유명한 칼세드니아 모습을 보이면 당연히 신자들의 시선은 그녀한테 모여들게 된다.
게다가 그녀는 남자하고 둘이서 같이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본 신자들은 소곤소곤 여러 가지 억측을 나눴다.
물론, 개중에는 흥분해서 칼세드니아의 모습에 빠져든 신자들도 있었지만.
그런 시선과 소곤소곤 거리는 대화가 들리는 공간 안에서 칼세드니아니는 익숙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길을 나아간다.
그리고, 정원 한편에 비어있는 의자를 찾아내고는 같이 걸어 다니던 사람과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는 게 뭐야?”
“……요즘 네가 신전을 나와서 집을 차린다는 것 같던데?”
어딘가 물어보기 힘들다는 듯이 말을 꺼낸 그 인물한테 칼세드니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사실이야. 그 얘기, 할아버님한테서 들었어?”
“아니, 예하한테서 직접 들은 건 아니다만…….”
“그 얘기는 사실이야. 그리고……나는 어느 분하고 같이 살 거야.”
같이 살 소년을 뇌리에 떠올리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한 표정을 보여주는 칼세드니아.
그 상쾌한 미소를 봤을 때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의 심장이 괴롭게 고동치고, 그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칙칙한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네, 네가 같이 살 남자라는 건 그 남자겠지……? 며칠 전에 신전에 와서 어제 주변에서 잡일을 하고 있던 그 하급 신관…….”
“그래, 맞아. 너도 만나 봤지? 그 분이야……그 분이야말로, 내가 계속 찾고 있던 분이야.”
라며 싱글거리며 미소짓는 칼세드니아. 그 미소를 보고 그의 마음이 더욱 삐걱인다.
“…………진심인 거냐……?”
“뭐?”
“너 정도의……<<성녀>> 라고까지 칭송받는 너 정도 되는 여자가, 그딴 잡일을 하는 하급 신관하고 같이 살고……그걸로 너는 행복해질 수 있는 거냐!?”
평소에는 온화한 그답지 않은 험한 말투. 그걸 그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칼세드니아는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확실히 그한테 말했다.
“그건 조금 달라. 아니, 역시 다르지 않을지도. 그 분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분을 행복하게 만들 거야. 그리고……그리고, 그 분이 행복하시다면 그거야말로 나한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이야.”
괴로운 과거를 경험한 타츠미. 그런 그를 행복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칼세드니아는 그를 이 세계로 소환한 것이다.
만약 전에 있던 세계에서 타츠미가 만족스러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면 칼세드니아도 그를 소환하거나 하진 않았다. 확실히 타츠미하고 재회하는 건 그녀의 비원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만족스런 생활을 부수면서까지 할 행동은 아니라고, 칼세드니아도 이해하고 있다.
“그 분하고 같이 살아가는 게 나한테 있어서는 최고의 행복인 거야.”
“그런가……네 결심은 변하지 않는 거군…….”
커다란 꽃 같은 미소를 짓는 칼세드니아를 보고 그는 고개를 땅으로 푹 숙이고는 얼굴을 양손으로 문질렀다.
힘없이 떨궈진 어깨가, 아니, 그의 온몸이 후들후들 하고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왜, 왜 그래……?”
이상한 분위기를 내뿜기 시작한 그의 모습에 칼세드니아는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그하고 맨 처음에 만났던 건 칼세드니아가 쥬젯페한테 거둬들여졌을 때다. 그 뒤로 그하고는 꽤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녀의 기억에 있는 그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이상한 분위기를 내뿜을 줄이야. 칼세드니아는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를 느끼고 격하게 흔들리는 어깨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다.
그때, 칼세드니아는 그가 고개를 숙이고는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중얼 뭔가를 말하고 있다는 걸 겨우 깨달았다.
“………………는…………내…………………………다…….”
땅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불길한 목소리. 칼세드니아는 뻗고 있던 손을 되돌리고는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너……설마…….”
떨리는 목소리가 칼세드니아의 아리따운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그 목소리에 반응한 듯이 고개를 든 그는 광기가 깃든 두 눈동자로 칼세드니아를 보고는 씨익 하고 끈적한 미소를 지었다.
“칼세드니아……너는 아무한테도 안 줘……너는……너는 내 거다…….”
지긋이 칼세드니아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동자에는 사람한테는 있을 수 없는 붉은 광채가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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