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현재 일본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되고 있는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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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제 12화『편린(片鱗)』
팔의 절반 정도 되는 길이로 잘려진 통나무를 세우고, 그걸 향해서 손도끼를 내리친다.
내리쳐진 손도끼는 통나무를 쩍 하고 세로로 가르고, 도끼날이 통나무 밑에 있는 땅바닥에 약간 박힌다.
두 개로 쪼개진 통나무를 다시 세워 한 번 더 손도끼를 내리친다.
땅, 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반원형이었던 통나무가 이번에는 4분의 1, 부채꼴 모습으로 바뀌었다.
4분할 한 통나무를 모아서 옆으로 던지고는 다시 새로운 통나무를 세워 손도끼를 내리찍는다.
타앙,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통나무가 깔끔하게 베인 걸 확인하고 타츠미는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건 이른바 장작패기.
타츠미는 어제 결심했던 것처럼 신전 잡일에 힘을 쓰고 있었다.
“……이, 이걸 전부 베는 건가요……? 저, 전부?”
눈앞에 산처럼 쌓인 통나무를 보고, 타츠미는 쉰 목소리로 물어봤다.
“그래, 맞다. 신전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엄청 많으니까 말이야. 땔감도 매일 엄청나게 쓴단 말이지. 그래서 장작패기는 중요한 일이라고, 신입.”
타츠미를 신전 뒤뜰까지 안내한, 몸집이 크고 험상궂은 얼굴의 중년 남자는 껄껄 하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의 등을 철썩철썩 두드렸다.
갑자기 등을 얻어맞아 타츠미는 무심코 헛발을 내딛었다. 그 때, 그가 목에 걸은 성인이 차르랑, 하는 소리를 내면서 흔들린다.
“분명히……타츠미라고 했던가? 자, 이걸 써라. 이걸로 통나무를 전부 세로로 3분할 하는 거다.”
그렇게 말하고는 중년 남자가 내밀은 건 손때가 묻은 손도끼다.
“사의 각이 되면 휴식이니까 말이다. 그때까지 힘내라.”
그 말을 남기고, 중년 남자는 쿵쿵 하고 큰 걸음으로 떠났다.
참고로, 사의 각이라는 건 일본 시간으로 말하자면 대충 정오를 뜻한다.
타츠미가 자기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니, 태양은 대체로 여섯시 경에 뜨고, 그 뒤로 두 시간마다 각 신전은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친다.
오전 6시에 한 번, 오후 8시에 두 번 하고, 두 시간마다 하나씩 종을 치는 횟수가 늘어가고, 오후 6시에 7번을 종을 치면 해가 진다.
그리고, 각각 종을 치는 횟수에 따라 일의 각부터 칠의 각까지 이름이 붙어 있다. 밤에는 종을 치지 않아서 딱히 호칭도 정해져 있지 않은 듯하다.
칼세드니아한테 물어보니, 종을 치는 타이밍은 해시계로 재고 있다고 한다. 또한, 비가 오는 날이나 먹구름이 꼈을 대를 위해서 타이머 같은 기능을 가진 매직 아이템이 있는 모양이지만, 이 아이템은 극히 희소가치가 높기 때문에 최고 사제인 쥬젯페 외에는 만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문외불출의 보물로, 칼세드니아조차 실제로 본 적은 없다는 모양이다.
하루 사이클은 24시간으로 지구와 같은 모양이지만, 매일 오전 6시에 태양이 뜨고 오후 6시에 저문다.
지구처럼 계절에 따라 밤낮의 길이의 변화는 없는 걸까, 하고 타츠미는 의문을 느꼈다.
아직 이 세계에 온 지 사흘째이기 때문에 밤낮의 길이 변화를 확실히 계측한 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쪽 세계는 대지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늘 쪽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천동설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타츠미는 아직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쪽 세계에는 대륙과 바다는 성계라고 불리는 안에 떠 있는 걸로 여겨지고 있다.
북쪽과 동쪽 바다의 끝에는 거대한 용이 있으며, 어디선가 대량의 바닷물이 바다로 유입되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 바다의 끝에도 마찬가지로 거대한 용이 있긴 하지만, 이쪽에선 어디론가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라고 하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세계관이다.
개중에는 남쪽과 서쪽의 용으로 빠져나간 바닷물이 허무의 세계를 통해 다시 북쪽과 동쪽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 라고 하는 설을 주장하는 현자도 있는 듯하지만, 바다의 끝에 있다고 하는 거대한 용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그 성계를 더욱 넘어간 저편에, 신들이 살고 있는 신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건 둘째 치고, 타츠미는 산처럼 쌓아 올려진 통나무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쳐다보고 있어도 그걸로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타츠미는 각오를 다지고 입고 있는 신관복의 소매를 걷어올려 기합을 넣었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건 원래 있던 세계에서 입고 있던 옷이 아니라, 쥬젯페한테서 받은 신관복이다.
어제 칼세드니아와 도시로 나갔을 적에 평상복이 될 옷이나 속옷 같은 것도 몇 벌 사 뒀지만, 신전에서 일을 할 때는 신관복을 착용하는 게 의무라는 게 있기 때문에 타츠미도 이 신관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타츠미는 쥬젯페한테서 신관으로서 정식으로 지위를 하사받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최하급의 하급 신관이지만, 이걸로 그의 이쪽 세계의 신분도 일단은 확립된 게 된다.
신전이라고 하는 조직은 나라와는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신전에 소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신분――성직자는 현자 같은 사람들과 동등한 지식 계급으로 치부된다――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신전에 소속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원래라면 어느 정도 심사를 받지 않으면 입문하는 건 허가되지 않는다. 타츠미가 그걸 넘겨버리고 최하급이라고는 해도 신관의 신분을 얻을 수 있던 건, 틀림없이 어디 사는 최고 사제가 그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 그럼, 하고 다시 통나무의 산과 대치하면서도 타츠미는 자기가 입고 있는 하얀 신관복을 향해 눈을 돌렸다.
과연 일이라고는 해도 이 하얀 신관복을 더럽혀도 괜찮을 걸까, 하는 의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입고 있는 신관복은 하급 신관의 것으로 색은 하야긴 하지만 신관 안에서는『작업복』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더럽혀도 벌을 받는 일은 없다. 애초에, 더럽혔을 경우에는 자기가 직접 옷을 빨게 되지만.
신관이 입는 신관복과 몸에 걸치고 있는 성인은 지위에 따라 디자인이 바뀐다.
참고로, 방금 전 타츠미를 뒤뜰까지 안내한 인물은 잡일을 하는 하급 신관의 감독관을 맡고 있는 상급 신관으로, 이름은 보가드이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타츠미는, 그 보가드한테서 건네받은 손도끼를 몇 번인가 휘둘러 봤다. 그 감촉을 확인한 타츠미는 근처에 있던 통나무를 하나 땅에 세웠다.
그리고 손에 쥔 손도끼를 가볍게 한 번 휘둘렀다. 손도끼의 도끼날이 통나무한테 박히는 것과 동시에, 통나무가 탕 하고 깔끔하게 절반으로 쪼개졌다.
“어라……? 힘 별로 안 넣었는데……?”
타츠미는 예상보다도 훨씬 간단히 쪼개진 통나무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바라봤다.
“뭐, 됐어. 간단하게 쪼개졌다고 해서 곤란한 것도 없고.”
타츠미는 그렇게 통나무를 계속해서 쪼갰다.
원래, 장작패기를 할 때는 받침대로 쓸 돌이나 나무에 통나무를 올려놓은 뒤 쪼개는 것이다. 땅에 꽂아 둬도, 부드러운 흙 위에서는 제대로 쪼개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지금까지 장작패기 같은 걸 해 본 적이 없는 타츠미는 그걸 모른 채로 계속해서 땅에 통나무를 두고 쪼갰다. 그게 약간 이상하다는 사실에 눈치 채지 못하고.
도중에 신전의 종이 두 번, 세 번 하고 울렸지만 장작패기에 집중하고 있는 타츠미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이윽고 정오인 사의 각을 알리는 종이 네 번 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가드가 느릿느릿하고 다시 뒤뜰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어, 신입. 얼마나 했……우왓!?”
보가드는 눈앞에 쌓여있는 장작의 산을 보고 경악스러운 소리를 내질렀다.
오늘 준비해 뒀던 대량의 땔감용 통나무가 전부 깨끗하게 네 개로 쪼개져 장작으로 변모해 있던 것이다. 놀라지 말라고 하는 게 무리일 것이다.
“아, 보가드 씨. 말씀하셨던 대로, 통나무는 전부 쪼개 놨는데요?”
쌓아올린 장작 앞에서 땅바닥에 앉아있던 타츠미가 일어나더니, 놀라서 소리도 못 내는 보가드한테 태평하게 말을 걸었다.
“아, 아니, 전부 쪼갰다니……반나절 만에 전부 쪼개버린 거냐……? 그렇게 많았던 걸……?”
보가드는 몇 번이나 타츠미와 장작의 산을 번갈아 쳐다봤다.
오늘 아침,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난 한 소년. 랄고필리 왕국에서는 일단 찾아볼 수 없는 보기 드문 흑발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오늘부터 신전에서 잡일을 하는 신입 하급 신관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보가드보다도 높은 지위의 누군가한테서 그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라고 해서 그가 있는 곳으로 온 모양이다.
보가드는 그 우람한 팔로 팔짱을 끼면서 힐끗 하고 흑발의 하급 신관을 마음껏 관찰했다.
키는 별로 크지 않다. 거대한 몸집의 보가드와 비교하면 그 몸은 머리 하나 이상은 차이가 난다.
몸 쪽도 가냘프고, 팔 두께 같은 건 보가드의 절반 정도밖에 없다. 마치 여자 같은 팔이군,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타츠미를 관찰한 보가드는 힘 쓰는 일은 무리일 것 같다며 장작패기를 맡기기로 했다.
장작패기를 하는데도 상당한 힘이 필요하지만, 우물에서 퍼올린 물을 옮기는 일이나, 매일같이 들어오는 신관들의 식료를 옮기는 중노동보다는 나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여도 보가드는 의외로 부하를 잘 챙겨주는 남자다. 거대한 몸집과 험상궂은 얼굴 탓에 잠깐 보면 무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한테는 제대로 보답을 해 주는 사람인 것이다.
할 수 있을 법한 일을 할 수 있을 법한 사람한테 맡긴다. 그것도 또한 보가드의 임무인 것이다.
그 보가드가 보기에는 타츠미의 가녀린 팔――어디까지나 보가드의 기준으로――사의 각까지 4분의 1이나 마쳐 놨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4분의 1은커녕, 전부 다 해버릴 줄이야. 만약 보가드가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많았던 통나무를 반나절 만에 전부 쪼개는 건 불가능한데.
맨 처음에는 멍하니 타츠미와 장작의 산을 바라보고 있던 보가드였지만, 그 험상궂은 얼굴에 남자다운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의외로 하는군, 신입……아니, 타츠미! 다시 봤다고!”
보가드는 팍팍 하고 타츠미의 어깨를 치더니, 그 자리에 다시 앉으라는 듯이 재촉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했으니 꽤 배도 고파졌겠지?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보가드는 가지고 있던 꾸러미를 펼치고 안에서 뭔가를 집어넣은 빵 같은 걸 집어들었다.
그걸 맛있다는 듯이 우물거리면서 타츠미를 살펴보니, 어째선가 그는 멍하니 서 있었다.
“왜 그러냐? 얼른 앉아서 밥 먹어라. 휴식 시간은 별로 길지 않다고?”
“아, 아뇨, 그게……사실은 밥이…….”
그렇게 말하면서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 뒤편을 긁적이는 타츠미. 그는 이 순간까지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다는 걸 완전히 잊어먹고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랄고필리 왕국에서도 식사는 하루에 3번 먹는 관습이 있는 것 같다. 일의 각(오전 여섯시 경) 과 이의 각(오후 여덟시 경) 의 사이에 한 번 하고, 사의 각(정오 쯤) 전후에 한 번, 그리고 칠의 각(오후 6시 경) 이후로 한 번, 총 3번이다.
그리고 오의 각(오후 2시 경)과 육의 각(오후 4시) 사이에 가벼운 간식을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어제 칼세드니아한테서 들었지만, 그걸 완전히 잊어먹고 있던 것이다. 당연히 타츠미는 점심 준비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곤란해진 타츠미가 멍하니 서 있자, 보가드는 어이없다는 듯이 타츠미를 올려다 봤다.
“뭐냐? 밥 준비도 안 해온 거냐? ……그러면, 식당까지 가야겠는데.”
신전 한쪽에는 신관한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 그렇지만, 타츠미는 아직 그 식당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가 이쪽 세계에 오고 나서 그의 식사는 칼세드니아가 계속 준비해 줬기 때문이다.
그 식당에서는 수행의 일환으로 하급 신관들이 돌아가면서 요리 당번을 맡고 있지만, 그 식당은 타츠미와 보가드가 있는 뒤뜰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다.
“뭐, 너한테 맡기려고 했던 일은 전부 끝내 버렸으니, 식사를 다 먹는 게 조금 늦어도 상관없다만……너만 괜찮다면 내 밥을 조금 나눠 줄까? 뭐, 내 마누라가 만든 거니까 맛은 보증 못 한다만?”
크하하하하 하고 웃던 보가드는 다시 타츠미한테 앉으라는 듯이 권유했다.
“아뇨, 모처럼 보가드 씨를 위해서 부인께서 만드신 걸 제가 받을 수는 없죠. 저는 이대로 식당까지 갈게요.”
“그러냐?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천천히 먹고 와라.”
보가드한테 알겠다고 말한 뒤, 타츠미는 식당을 향해 걸어나갔다.
아니, 걸어나가려고 했다.
타츠미가 신전 안과 뒤뜰을 잇는 문을 향해 돌아봤을 때,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그 문이 멋대로 열렸다. 물론, 문이 멋대로 열린 게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신전 안에서 문을 연 것이다.
문을 연 그 누군가는, 문에서 머리를 내밀고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봤다. 그 동작에 맞춰서 머리 위에 튀어나온 한 줄기의 바보털이 살랑살랑 하고 흔들린다.
그리고 타츠미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싱긋, 하고 꽃이 피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 점심을 가져왔어요!”
“치코. 일부러 점심을 가져온 거야?”
“네. 주인님이 어디서 일을 하고 계신지 몰라서 이리저리 찾아다니느라 늦어버렸어요. 죄송해요.”
타박타박 하고 타츠미한테 다가간 칼세드니아는 꾸벅 하고 인사를 하더니 가져온 꾸러미를 그한테 내밀었다.
“고마워, 치코. 그런데 치코는 이미 먹은 거야?”
“어뇨, 그게……주, 주인님만 괜찮으시다면 같이 먹을까, 해서요…….”
살짝 볼을 붉히고,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말하는 칼세드니아. 물론, 타츠미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응, 같이 먹자. 아, 맞아.”
여기서 그제야 타츠미는 보가드를 떠올렸다. 그한테 칼세드니아도 동석해도 될까 물어보려고 그가 있던 곳을 돌아봤다.
“보가드 씨……어라?”
그 보가드는 입을 떡 벌린 채로 몸이 돌이 된 것처럼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타츠미와 칼세드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먹다만 빵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겨우 보가드가 움직였다.
“카, 카카카카카카카카칼세드니아 니이임!? 서, <<성녀>> 님이 어째서 타츠미의 점심을……!?”
너무 놀라 눈을 치켜뜬 보가드가 몇 번이나 타츠미와 칼세드니아를 본다.
한편, 보가드가 자신을 쳐다보자 칼세드니아는 이상하다는 듯이 약간 고개를 기울이면서 타츠미한테 물어봤다.
“주인님? 이 분은……?”
칼세드니아라고 해서 신전 관계자 전원의 얼굴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그녀의 지인은 신전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위가 높지 않은 보가드는 그녀의 교우 범위에서는 벗어나 있던 것이다.
“아아, 오늘 일에서 신세를 진 보가드 씨야.”
“어머, 그러셨나요? 보그다 님, 제 주인님이 신세를 지고 계시네요.”
“주, 주인……!?”
보가드한테 인사를 한 칼세드니아와 얼빠진 목소리를 내는 보가드. 칼세드니아의 “주인” 이라는 말을, 보가드는 “남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일본에서 주인은 주인이라는 뜻 외에 남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부를 때 ‘고슈진’ 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죠. 모에에에!)
“그, 그럼, 타츠미는……아니 타츠미 님은…….”
오해 때문에 말을 고친 보가드 옆에서 칼세드니아랑 같이 자리에 앉으면서 타츠미는 홱홱 하고 손을 휘저었다.
“하지 마세요, 보가드 씨. 갑자기 님, 같은 호칭 붙이지 마세요.”
“아, 아니, 하지만 말이야…….”
“상관없어요. 저는 어디까지나 신입 잡일꾼이니까요. 저하고 치코……칼세드니아는 다른 사람인걸요.”
“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카, 칼세드니아 님도 그래도 상관 없나요?”
“네. 주인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주인님의 의사를 존중할 뿐이에요.”
“하아……. 그나저나, <<성녀>>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줄이야…….”
보가드는 넓은 턱을 엄지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다시 타츠미와 칼세드니아의 기색을 보았다.
평소의 당당한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체현시키고 있는 칼세드니아와, 그 칼세드니아한테 이것저것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타츠미.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붙어다니던 부부의 모습 같았다. 적어도 보가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 뒤, 세 명이서 즐겁게 식사를 했다.
맨 처음에는 <<성녀>>가 동석했다는 사실로 인해 위축되어 있던 보가드였지만 그가 원래 갖고 있던 세세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성격 때문인지 금방 칼세드니아하고 친해졌다.
그렇지만 최고 사제의 손녀로서 명성이 높은 <<성녀>>가 상대이기 때문에 평소 주변 사람들한테 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정중했지만.
이윽고 즐거웠던 식사도 끝나고, 세 사람은 식사 정리를 마치고 일어섰다.
“자 그럼, 타츠미.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한테 오늘 맡겨둘 생각이었던 일은 전부 끝나 버렸단 말이지. 이제부터 어떡할 거냐?”
“달리 뭔가 도와줄 일이 있다면 그쪽을 도울까 하는데요?”
“그러냐? 그럼, 미안하다만 네가 벤 장작의 4분의 1정도를 주방까지 옮겨 줘라. 남은 건 장작 저장고가 있으니까 거기로 옮겨라. 저장고는 지금부터 내가 안내하마. 그리고, 그게 끝나면 오늘 일은 끝이다.”
일어선 타츠미와 보가드는 오후의 일에 대해 합의를 했다.
그리고 보가드와 친하게 얘기하는 타츠미의 모습을 칼세드니아가 미소지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그럼 오후도 열심히 해 볼까!”
“네, 열심히 하……?”
기합을 넣으려는 듯이 자신의 뺨을 짝 하고 양손으로 치는 타츠미. 그런 타츠미한테 격려의 말을 건네려고 하다가, 칼세드니아는 어째선지 도중에 말을 잘랐다.
“왜 그래, 치코?”
“아, 그,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뭔가를 얼버무리는 듯한 칼세드니아의 모습에 타츠미는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굳이 그 이상 물어보지 않고, 장작 저장고가 어디 있는지 배우기 위해 보가드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 타츠미의 등을 지긋이 배웅하면서, 칼세드니아는 누구한테 들려줄 생각 없이 툭 하고 중얼거렸다.
“지금 잠깐……아주 잠깐, 주인님한테서 마력을 느낀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기분 탓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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