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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 4장 제 13화『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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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현재 일본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되고 있는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의 번역입니다. 


원본 링크는 여기


4장 제 13화 『저주』


작은 금속음이 울린 뒤엔, 모여있던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타츠미의 구혼 대사는 쥬젯페와 마찬가지로 <바람> 마법사가 그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있다.

따라서 예배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타츠미가 칼세드니아한테 무슨 말을 한 건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지른 커다란 함성은 타츠미가 칼세드니아한테 구혼했기 때문이 아니다.

칼세드니아가 타츠미의 구혼 얘기에 보인 반응. 그것이야말로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른 이유였다.




“나, 나랑……………………………………지금, 이곳에서……겨, 결혼해 줘!!”


타츠미가 그 말을 입에 담자마자, 칼세드니아는 손에 쥐고 있던 성수가 든 병을 떨어트리고――아니, 내던지고, 1초조차 생각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뛰쳐든 것이다.

타츠미의 품을 향해.

그리고 타츠미의 가슴팍에 이마를 문지르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없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모인 사람들이 보기에 칼세드니아의 그 태도는 말은 없었더라도 뭘 의미하고 있는지 명백했다.

《성녀》가 이국 청년의 구혼을 승낙했다.

그 사실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지른 것이다.

예배당 단상에서 결혼의 수호신인 서바이브 신의 최고 사제가 지켜보는 한편, 서로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칼세드니아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한 걸 가늠하고, 타츠미는 그녀의 몸을 상냥하게 살짝 떨어트렸다.


“나는……아직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됐어. 그러니까 이쪽의 결혼 방법을 잘 모르니까……그게, 그……이 다음부터는 우리나라에서 쓰는 방식으로 하려고 하는데……물론, 쥬젯페 씨한테 허락도 받아놨어.”


칼세드니아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바라보니 쥬젯페가 상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랄고필리에 있어서 결혼식이란 꽤나 수수한 것이다.

예전에 타츠미가 일본에서 치르는 결혼식 방법에 대해 쥬젯페에게 얘기했을 때, 쥬젯페는 그 얘기에 매우 커다란 흥미를 보였다.

아마도 쥬젯페는 그때부터 생각했던 것이리라.


타츠미가 말하는 일본식 결혼식을 언젠가 자신이 직접 주례를 맡아보고 싶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그걸 이 나라의 풍습으로 만들고 싶다고. 의외로 성대한 축제를 좋아하는 쥬젯페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타츠미한테는 이해할 수 있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꼭 그 시험작을 자신들이 직접 해보지 않아도 될 텐데.


솔직히 말하자면 타츠미한테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칼세드니아가 기뻐해준다면 약간의 부끄러운 마음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타츠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자 신관이 다가왔다.


“방금 전 이 젊은이가 말했듯이, 지금부터 이 두 사람의 결혼 의식은 그의 고향 풍습을 따라 시행한다. 칼세드니아가 이 젊은이――타츠미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방측의 풍습에 따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을 터.”


단상 위에 있던 쥬젯페가 예배당에 모여있는 사람들한테 설명한다.

그러고 있는 동안 아직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던 칼세드니아가 두 여성 신관과 함께 예배당을 뒤로 했다.


“지금부터 신부는 일단 자리에서 물러나 의복을 갖추고 올 것이다. 으레 여자들이 준비할 때는 시간이 걸리는 법. 자네들은 느긋하게 기다려 주면 고맙겠네. 참고로 이걸 타츠미의 나라에서는 『오이로 나오시(お色直し,옷 갈아입기)』라고 부르는 모양이네.”


농담 섞인 쥬젯페의 말을 듣고 군중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칼세드니아가 하는 건 오이로 나오시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틀린 말도 아니고, 그렇게 엄격하게 일본식을 재현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타츠미는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타츠미도 결혼식 방법에 관해서는 그렇게 많이 아는 게 아닌 것이다.

그도 일본에선 평범한 고등학생. 친척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나갈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기다린 후, 예배당 입구가 다시 열렸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단상에서 기다리는 청년과 마찬가지로 낯선 무늬의, 하얀색으로 통일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거기 있었다.

백금색 머리칼은 복잡하게 땋아 올려지고, 그 머리칼을 레이스 원단으로 만들어진 베일이 장식하고 있다.

가슴께는 크게 벌어져 여성의 풍만한 가슴이 강조되어 깊은 계곡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곳에 천박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다.

잘록한 허리부터 발끝까지 드레스와 레이스를 듬뿍 사용한 스커트가 살랑살랑 펼쳐져 있다. 곳곳에 장식된 보석과 조화가 예배당 도처에 설치된 마법광을 반짝반짝 반사시킨다.

가냘픈 팔에는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레이스로 만들어진 긴 장갑. 그 손에 쥐어져 있는 건 타츠미한테는 익숙한 것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부케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보는 순백의 의장――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아름다움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 나라, 랄고필리 왕국에는 웨딩 드레스가 없다.

약혼 의식 때에는 정장을 입긴 하지만, 결혼식을 위한 의장을 준비한다는 풍습이 없는 것이다.

의식 쪽도 매우 간소한데, 신한테 결혼을 맹세하고 신랑과 신부가 결혼의 증표가 되는 귀걸이를 걸어주면 그걸로 끝. 약혼하고 있을 경우엔 서로의 귀걸이를 교환해 지금까지와는 반대쪽 귀에 귀걸이를 참으로써 결혼이 성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의식 자체는 거기까지고, 그 뒤엔 가족이나 친구들과 자택이나 술집 같은 곳에서 연회를 연다. 그것이 이 나라의 일반적인 결혼식이었다.

물론 최근엔 일본에서도 신전 의식은 간단히 끝낸 후, 피로연을 성대하게 여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신부 예복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이 나라의 사람들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칼세드니아를 보며 무심코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신부를 단상까지 에스코트하는 건 정장 차림을 한 그녀의 의붓오빠 타우로드. 원래대로라면 양아버지인 쥬젯페의 역할이지만 이번엔 쥬젯페가 식의 주례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의붓오빠한테 이 역할이 돌아갔다.

얼굴을 내리 깔면서, 신부는 의붓오빠한테 에스코트를 받으며 예배당 안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앞을 지나가는 신부의 순백 의상과 그녀의 아름다움의 탄식을 내쉴 뿐.

이윽고 신부는 신랑이 기다리는 단상 위에 도착했다.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앞에 선 칼세드니아. 타츠미는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타츠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칼세드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타츠미도 그 사실을 깨닫고 겨우 입을 뗐다.


“…………역시, 칼세는 예쁘구나.”

“네?”

“처음으로 이 나라에 왔을 때 칼세 너랑 처음으로 만나고……그때부터 너는 정말 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설마 웨딩드레스 차림을 한 칼세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줄이야……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운 네가 내 신부라니……솔직히, 아직도 안 믿겨.”


타츠미의 너무나 솔직한 말을 정면으로 듣고 칼세드니아는 무심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장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서방님의 것이잖아요?”

“응, 그랬지. 칼세는 처음부터 내 칼세였어.”


조용한 정적이 감돈 예배당에서 두 사람의 대화소리만이 들린다.

이때 타츠미와 칼세드니아는 서로에게만 너무 집중하고 있던 터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나눈 대화가 <바람>의 마법사를 통해 이 예배당 구석구석까지 전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훗날, 바스나 자독 등이 이 사실을 가지고 놀리자 수치심으로 번롱하게 되는 타츠미였지만, 그건 좀 더 나중의 이야기.

게다가 이 장면을 마봉구로 살짝 기록하고 있던 쥬젯페한테서 결혼기념일이라며 그 마봉구를 선물 받아, 그걸 본 타츠미가 다시 번롱하게 되는 것도 훗날의 이야기.

또다시, 오늘 이 장면을 음유시인이나 배우들이 「《성녀》의 결혼」이라는 주제의 연극으로써 후세에 남게 되는데, 타츠미와 칼세드니아가 지금 나눈 대화가 「《성녀》의 결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써 후세에 계승되어질 것이라는 것도 또한 훗날의 얘기였다.




결혼 의식――아니,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식의 주례자인 쥬젯페의 대사 등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일본의 결혼식과 비슷했다.

이에 관해서는 쥬젯페와 타츠미가 소개한 엘 사이에서 여러 방면에서 꼼꼼한 회의를 나눴다는 모양이다.

자신도 결혼식을 치른 경험이 있으며, 또한 지인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던 엘의 지식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의 최대 이벤트를 맞이한다.

랄고필리 식 결혼식의 최대 이벤트라 한다면, 그것은 결혼의 증표가 될 귀걸이를 교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일본식이기 때문에 귀걸이 교환은 치러지지 않는다.

타츠미는 칼세드니아와 마주보더니,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살짝 빳빳한 천으로 둘러싸인 상자. 이것도 일본인인 타츠미한테는 익숙한 것이지만, 랄고필리 사람들은 처음 보는 것.

타츠미는 칼세드니아한테 상자를 열어보였다.


“……반지……인가요?”


칼세드니아가 말하는 대로 상자 안에는 크기가 살짝 다른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들어 있었다.


“응. 우리나라에서는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는 게 결혼한 증거거든.”


백금색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장식은 없는 심플한 디자인의 두 반지.

약혼반지와 달리 결혼반지에는 보석을 끼우지 않던가, 혹은 반지 속에 작은 보석을 넣는 경우가 많다.

여기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보석이 너무 심하게 돌출되어 있으면 일상 가사를 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 칼세. 왼손을 내밀어 줘.”

“……네.”


머뭇머뭇 왼손을 타츠미한테 뻗는 칼세드니아. 타츠미는 그 손을 상냥하게 붙잡더니, 그 가느다란 손가락에 작은 크기의 반지를 살짝 끼워주었다.

물론 사이즈가 작거나 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는다. 이에 관해선 사전에 꼼꼼하게 조사를 해 놨다.

자신의 왼손 약지 끝에서 백금색 반지가 반짝 하고 빛나자, 칼세드니아가 그 광채에 저도 모르게 매료되고 말았다.


“이번엔 칼세가……나한테 반지를 끼워줄래?”

“네……물론이죠.”


칼세드니아는 커다란 쪽 반지를 손에 쥐더니, 타츠미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었다.

타츠미와 자신의 왼손에 빛나는 같은 무늬의 반지. 그걸 본 칼세드니아의 마음에 형용하기 힘든 기쁨이 솟아오른다.


“칼세……이건 저주야.”

“저주……말씀이신가요?”

“그래. 이걸로 칼세는 ‘나’라는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도 칼세 너를 놓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니까……나는 너한테 영원히 풀 수 없는 저주를 걸은 거야.”


맨 처음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칼세드니아였지만, 타츠미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를 이해하자 그 루비 같은 눈동자에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물론, 그건 결코 차가운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네. 이렇게 행복한 저주라면……저는 기꺼이 저주 받겠어요. 그렇지만……저도 서방님한테 똑같은 저주를 걸 거라구요?”

“그래, 상관없어. 나도 네 저주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테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꽉 끌어안더니……서로의 입술을 맞췄다.

그때까지 묵묵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쥬젯페는 모여있던 관중을 향해 선언한다.


“지금, 이때부터 이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이것은 서바이브 신께서도 인정한 것이며, 이 부부의 연은 미래영겁 끊기지 않으리라! 자, 이 젊은 두 사람에게 다시 한 번 축복을!”


쥬젯페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바이브 신전의 종에서 장엄한 음색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이곳에 있던 사람들도 종소리에 지지 않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환성을 내지르며 박수를 쳤다.


이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함께, 진정한 부부가 된 타츠미와 칼세드니아.

입술은 떼긴 했지만, 아직까지 단단히 서로를 끌어안는 두 사람을 서바이브 신의 석상이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평상시엔 무표정한 모습의 그 석상이 어째선지 이날만큼은 무척이나 상냥해 보였다며, 이 의식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훗날 입을 모아 얘기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