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 4장 제 11화『준비 진행 중』

『큐빅』 2016. 5. 22. 23:26

이 소설은 현재 일본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되고 있는 '내 애완 동물은 성녀님'의 번역입니다. 


원본 링크는 여기


4장 제 11화 『준비 진행 중』


신년제 이틀째 오후.

타츠미와 칼세드니아는 함께 궁정의 훈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여기선 기승 창 시합의 예선이 치러진다. 지금도 타츠미와 칼세드니아의 시선 끝에선 휘황찬란한 갑옷과 기승 창을 장비한 기사들이 힘찬 기세로 격돌하고 있었다.

기승 창 시합은 말 그대로 기수(騎獸)에 올라탄 상태에서 두 상대방이 정면으로 격돌하고, 고속으로 교차하는 순간 상대를 기승 창으로 찔러 위에서 떨어트리면 승리로 인정된다. 

지구에도 과거엔 비슷한 경기가 존재했지만, 당연히 지구의 그것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기사들이 올라타 있는 기수가 말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이 나라의 기사들이 기수로써 사용하고 있는 건 타조를 두 언저리 정도 크게 만든 날개가 퇴화한 새의 일종이다.

타조보다 전체적으로 둥그런 실루엣을 가진 그 새는 이 나라에서는 파로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대체 왜, 전체 모습이 참새 같은 걸까…….”


이 파로우를 처음 본 타츠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흰색과 갈색, 그리고 곳곳에 검은색이 들어간 파로우의 깃털 색깔은 확실히 타츠미가 말한 것처럼 참새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참새보다 날카로운 인상의 새이기도 하다.

파로우는 발도 빠르고 내구력도 뛰어나지만, 사물을 끄는 힘이 약간 뒤진다.

따라서 랄고필리 왕국에선 「마차」 대신 「조차(鳥車)」는 존재하지 않으며, 「저차(猪車)」라고 부를 만한 게 가장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있었다.

저차를 끄는 건 말 그대로 돼지와 매우 비슷하게 생긴 오크라는 이름의 가축화된 마물이다.

오크라고 하면, 일본에선 수많은 판타지 소설 같은 곳에 등장한 돼지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 마물이 일반적이지만,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오크라고 하면 이 돼지 마물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랄고필리 왕국에선 소나 말 같은 야생종은 존재하긴 하지만 가축으로써는 별로 이용되고 있지 않으며, 대신 파로우나 오크가 가축으로써 여러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오크는 돼지랑 비슷하게 힘이 강하고 외견도 험상궂지만, 성격은 온화하며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에 이 나라의 옛 사람들은 가축으로써 야생 소나 말보다 오크를 골랐다는 모양이다.

참고로 상위 귀족 사이에서는 저차보다 마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이 나라에 있어서 마차는 타츠미의 감각으로 따지자면 고급 승용차에 해당하는 것일까.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기사 한 사람이 화려하게 장식된 파로우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기사는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땅에 내리쳤고, 반대로 그 기사를 파로우에서 떨어트려서 승리를 손에 쥔 기사는 투구를 벗어 맨얼굴을 드러내면서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자신의 승리를 과시한다.

승리한 기사가 자랑스럽게 회장에서 물러나려고 했을 때, 일반 관객 앞쪽에 앉아있던 타츠미와 칼세드니아의 옆을 지나쳐 간다.


“어라……? 저 기사는…….”


타츠미는 그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그와 처음으로 만난 건 다름 아닌 이 훈련장이다.

아무래도 기사 쪽도 타츠미와 칼세드니아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모양인지, 기사는 미소를 짓더니 관객석 쪽으로 다가왔다.


“오오, 타츠미! 보러 와 준 건가!”

“이기셨네요, 가일 씨! 축하드려요!”


그――가일 유토리로스는 이 훈련장에서 일어난 사고 때, 타츠미한테 시비를 걸었던 기사이다. 하지만 그 뒤 화해한 지금,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됐다.


“순조롭게 내일 본선에 나갈 수 있게 됐지. 가능하다면, 내일도 보러 와 주게.”

“아, 내일 말인가요……내일은 그게…….”


옆자리에 있는 칼세드니아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말을 흐리는 타츠미. 그런 타츠미를 칼세드니아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바라본다.


“아, 내일은 신전 쪽에서 조금 일이 있어서요……저, 저도 승기 창 시합 결승은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런가, 신전의 임무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내일은 반드시 우승해 보이지! 그때는 술 한 잔이라도 사 달라고?”


타츠미의 태도를 보고 뭔가를 대충 눈치 챈 것인지, 가일은 명랑하게 웃더니 손을 흔들면서 훈련장을 뒤로 했다.




그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가일의 등을 바라보던 타츠미는 다시 시합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결국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랑하는 여자로 기울고 만다.

상쾌한 초봄――이 나라에서 봄은 「해양의 계절」이라 불린다――의 공기가 칼세드니아의 백금색 머리카락을 살랑 흔든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주변에 빛이 춤을 추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밝은 태양빛이 칼세드니아의 미모를 밝히고, 평소보다 밝게 느껴지는 건 분명 타츠미한테 한정된 얘기가 아닐 것이다.


그 증거로, 타츠미와 칼세드니아 주변에 앉아있는 젊은 남자들 대다수가 승기 창 시합을 내버려두고 칼세드니아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징적인 건, 루비처럼 붉은 진홍빛 두 눈동자일 것이다. 봄의 화창한 빛 덕분인지, 그녀의 두 보석은 진짜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런 여자와 같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타츠미가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갑자기 칼세드니아와 눈이 맞았다.

아무래도 타츠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모양이다.


“무슨 일이세요?”

“아, 아니, 아, 아무것도 아냐……!!”


타츠미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허둥지둥 승기 창 시합 회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실제론 승기 창 시합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그의 가슴속엔 내일 있을, 쥬젯페가 꾸민 그 사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 있을 일을 생각하니 위에 구멍이 뚫릴 것만 같다. 만약 내일 쥬젯페가 꾸민 일을 실패한다면, 그냥 수치스러운 일로 끝나지 않으리라.

타츠미도 설마 칼세드니아를 상대로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하고 무심코 최악의 사태를 떠올리고 만다.

하지만 그런 불안과 동시에, 가슴이 기대로 부푸는 부분도 확실히 있는 것이다.

불안과 기대라는 정반대의 감정을 품으면서 타츠미는 내일 있을 생각하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기승 창 시합을 다 본 타츠미와 칼세드니아는 몸을 바싹 기대며 그대로 축제 분위기에 들떠있는 도시 안을 보고 돌아다녔다.

도시 한구석에서 기교를 뽐내는 음유시인이나 곡예사의 기량을 보고 감탄하며 은화를 던져주거나, 노점상에서 팔고 있는 음식을 사 먹으면서 맛을 즐기거나.

슬쩍 들어가 본 가게에서 과실주를 마셔 보는 둥, 두 사람은 마음 가는 대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해가 저물었을 때, 겨우 타츠미와 칼세드니아는 자신들의 집으로 향했다.

전기 같은 게 없는 이 랄고필리 왕국에선 원래대로는 해가 저물면 그날 하루의 끝을 의미한다.

환락가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충분한 조명이 없는 한밤중엔 곧바로 잠자리에 드는 게 상식인 것이다.

하지만 이 축제 동안만큼은 다르다. 축제 기간 중에는 도시 안에 모닥불이 피워져 밤중에라도 환호성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역시 현대 일본처럼 그렇게 시끄럽진 않지만, 그래도 평소와 비교해 보면 일몰 후에도 상당히 들뜬 분위기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집 밖에서는 계속해서 환호성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밤에 들썩거리는 건……엄청 오랜만이네.”


예전에 일본에 있었을 적이라면 당연했던 일.

24시간 영업 점포가 마을 안에 잔뜩 있고, 가로등은 하룻밤 내내 계속 밝혀져 있다.

설령 한밤중이라도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잠들지 않는 마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을 그 장소.


“그러네요. 저도 기억나요. 예전에 서방님……아니, 주인님이랑 같이 살았던 그 마을이……정말로 밤에도 활기찬 곳이었어요…….”


창문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타츠미의 옆에 서서 그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대는 칼세드니아.

그녀도 확실히는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다.

밤길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전기 덕분에 집 안은 늘 한낮처럼 밝았고, 텔레비전을 켜면 심야라도 재밌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때로는 경찰차나 구급차,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시끄러웠을 정도였다.

축제 분위기에 들썩거리는 밤을 보며 이 풍경을 일본과 대조시켜 보던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붙잡으면서 언제까지나 잠들지 않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신년제도 마지막 날.

축제도 오늘이 끝이기에, 이른 아침부터 도시는 시끌벅적했다.

늘 그랬듯이 칼세드니아가 준비해 준 아침 식사를 다 먹은 타츠미는 오전 중에 있을 경비 임무를 위해 신전으로 가려고 집을 뒤로 한다.


“그럼, 다녀올게.”

“임무, 열심히 해 주세요. 점심은 준비해 둘 테니까, 신전에서 늘 먹던 곳에서 같이 먹어요.”


오전 중엔 집에 남을 칼세드니아한테 손을 흔들면서 타츠미는 신전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타츠미는 도중에 신전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 신전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신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타츠미의 걸음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다.

그렇게 타츠미가 도착한 건 그가 잘 아는 어떤 여관 겸 술집. 입구 옆에 내걸려 있는 간판에는 여전히 일본어로 〔엘프의 쉼터〕라고 적혀 있다.

타츠미는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밀더니, 카운터 안쪽에 있는 엘의 모습을 보고 그녀한테 다가갔다.


“아, 타츠미 씨.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늘 그랬듯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맞이해 주는 이 가게의 여주인. 그녀는 타츠미의 모습을 보더니, 일단 안으로 돌아갔다가 곧장 가게로 돌아왔다.

그 팔에 어떠한 짐을 끌어안고.


“이쪽이 준비된 의복이에요. 그건 그렇고, 역시 서바이브 신전의 최고 사제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신 양복점인만큼 대단하네요―. 제가 보여준 환각을 이렇게 충실하게 재현시켜 주다니.”


그렇게 말하면서 엘이 펼친 의복은 랄고필리 왕국에서는 볼 수 없을 장식의 옷이다. 하지만, 그건 타츠미한테 있어서 익숙한 것이다.

물론, 그걸 실제로 입어보는 건, 그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칼세 씨의 의복 쪽도 제가 보여준 환각을 기본으로 삼아서 크와로트 공작가에 드나드는 양장점 직원분들이 총력을 다 해서 만들었다는 모양이더라구요?”

“고맙습니다, 엘 씨. 이번엔 정말로 많은 걸 도와주셔서…….”

“괜찮아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 의복 쪽은 서바이브 신전으로 옮겨 둘 건데, 이것만 타츠미 씨가 직접 들고 가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엘이 꺼낸 건 손바닥 크기의 작은 함. 이것도 또한, 엘이 잘 아는 장인한테 특별 주문해서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작은 함도 타츠미나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엘한테 있어선 익숙한 것이다.


“의식 후에, 이 가게에서 한 자리 만들어 둘 테니까요. 기대하고 있으세요.”

“아하하하. 이른바 2차라는 그거군요……으으, 뭔가 더 심한 압박감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타츠미는 위 언저리를 한쪽 손으로 억눌렀다.


“후후후……그러고 보니, 야스타카 씨……아니, 죽은 제 남편도 당일 아침에 똑같은 소리를 했었네요.”


옛날 일을 떠올린 엘은 살짝 그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런 엘한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인 타츠미는 다시 신전으로 가기 위해 〔엘프의 쉼터〕를 뒤로 했다.

출입구 문을 통해 입구 바깥으로 나가는 타츠미.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엘은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혹시, 이게 어엿한 성인이 된 아이를 내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이라는 걸까요?”


엘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남편 사이에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엘. 당연히 지금까지 200년 이상 살아온 그녀의 인생 속에서 그런 감정을 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엘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심정을 약간이나마 품게 해 준 타츠미한테 마음속으로 감사의 말을 늘어놓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