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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용사의 복수담~실망했습니다, 용사 그만두고 전 마왕하고 파티 짜겠습니다.'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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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죽음의 늪』
제 18화 『잊어버리고 있었던 마음을』
――여기서 도망쳐라.
엘피의 말에 몸이 굳었다.
지금, 우리들한테 남겨진 건 후퇴뿐이다.
그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말한 본인한테 도망칠 의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너는 어떡할 거냐, 엘피.”
“도망치면 저 녀석은 쫓아올 거다. 그러니, 누군가 한 쪽이 남아서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
“……그래서, 네가 남는다는 거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에 채찍질을 해 항의하려고 엘피한테 손을 뻗었다.
내 손이 닿는 것보다 빨리, 엘피는 기세 좋게 몸을 뒤집었다.
“……!”
직후, 엄청난 숫자의 검이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그 직전에 마력의 중력으로 인해 땅에 처박혔다.
“핫! 이때가 되어서 상담이냐!? 아주 느긋하군 그래!!”
엘피한테 기습 공격을 당한 탓에 디오니스는 상당히 냉정함을 잃고 있었다.
이쪽을 노려보면서 주변에 엄청난 숫자의 검을 전개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오리. 얼른 도망쳐라. 별로 길게 끌 수는 없다.”
“……너는 어쩔 생각이야. 남으면 어떻게 될지 정도는 알 수 있잖아?”
“그래, 알고 하는 행동이다.”
담담하게, 당연하다고 엘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잊어버리지 않았나? 나는 전 마왕이다. 살해당한다 하더라도, 시간을 들이면 다시 부활할 수 있다. 그러니 걱정 없다. 나는 괜찮다.”
방대한 마력을 내포한 마족은 살해당해도 소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엘피는 결계에 봉인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소생이라니……얼마나 걸리는 건데.”
“그렇군. 지금 상태라면 육백년 있으면 소생할 테지. 봉인을 깨려고 생각하면, 천년 정도 될까.”
별 것 아니라고, 엘피는 평상시의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뭘, 나는 원래부터 장수한다. 몇 백 년 정도는 별 것 아니지. 하지만 이오리, 너는 나하고 다르다. 너는 죽으면, 끝이다.”
죽으면 끝.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봉인되어 있다는 건 너한테 죽음보다도 무서운 것 아닌가.
미궁 밖으로 나왔을 때 엘피는 말했다.
――봉인 안은 세계와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깜깜해서 말이다. 빛도 소리도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담담한 말투로,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카렌의 저택에서 엘피는 말했다.
――싫다……싫단 말이다. 어두운 건……이제.
――혼자, 두지 말아다오.
이게 엘피의 진심이었던 거겠지.
오랜 기간 빛도 소리도 없던 세계에 그저 홀로 갇혀 있던 것이다.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
그걸 숨기고 엘피는 나한테 도망치라 하고 있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나는 엘피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눈치 챘다.
“……웃기지 마. 너 혼자 두고 갈 수 있겠냐. 같이 가!”
“바보 같은 소릴……! 길게 끌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얼른 가라!”
“――아마아츠. 엘피스자크의 의지를 이어 줘라.”
우리들의 대화에 끈적거리는 말투로 디오니스가 끼어들었다.
“도망을 안 치는 게 아냐. 엘피스자크는 못 도망치는 거야.”
실실 웃으면서 디오니스가 만들어낸 검 한 자루를 손에 쥔다.
그리고 뭔가를 베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내가 잔뜩 괴롭혀 줬으니까 말이야, 그 녀석은 이미 도망칠 체력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큭.”
시선을 돌려보니 엘피의 다리는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부터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젠장……!!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던 일이잖아!!
분신체라고는 해도 통각은 있다.
게다가 상처를 수복할 때마다 마력을 소비한다고도 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디오니스의 고문을 받은 것이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고작일 텐데……!
“내 온정을 배신한 엘피스자크는, 잔뜩 괴롭혀서 넝마더기처럼 만든 뒤에 죽여 주겠어.”
“……이오리!! 부탁이다, 얼른 도망쳐 다오……!”
디오니스가 손가락을 퉁긴다.
순간, 입구에 물의 결계가 생겨났다.
“네, 유감이었습니다아!!”
“……윽!”
엘피가 마안을 쏜다.
살짝 결계에 균열이 생겼지만, 다음 순간에는 완전히 수복되어 있었다.
“의외로 편리하단 말이지, 이 돌. 인간한테는 아까울 정도야.”
“요석인가……!”
디오니스가 손 안에서 요석을 만지작거린다.
결계의 효력을 강화시키고 유지시켜 주는 마력 부여품.
완전히 퇴로는 끊겼다.
“멍청한 놈……! 그래서 얼른 도망치라고 한 것이다!”
“맨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 따윈 없다고……!”
“헤에, 상냥하네! 그치만 말야, 맨 처음부터 놓칠 생각 따윈 없다고!!”
지속 포션 덕분에 다리의 상처는 나았다.
일어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마석을 사용해서, 어떻게든 반격을――.
“큭.”
디오니스의 마검이 쏘아진다.
숫자는 간단히 50을 넘고, 그 모든 게 불길한 빛을 쏘아대고 있다.
엘피의 마안을 돌파하고 정면으로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마 훼 봉 살』……!”
곧바로 펼친 방패도 박살나고, 시야가 빛으로 물든다.
소리가 사라졌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크……아.”
땅에 기세 좋게 처박혀, 호흡이 멈춘다.
그래도 몸을 일으키려고 땅에 손을 대는 것과 동시였다.
퍽, 하고 몸에 충격이 내달렸다.
“커……어억!?”
양손 양다리.
사지에 네 자루의 검이 꽂혀 있었다.
칼날이 지면을 관통하고 있어서 나는 땅에 붙어 있다.
“……아,”
목소리가 안 나온다.
체내를 관통하고 있는 철의 차가운 감각과 상처에서 느껴지는 열이 동시에 덮친다.
차갑다. 뜨겁다.
숨을 못 쉬겠다.
“담뿍 마력을 담은 특별제 검이야. 바로는 안 사라져.”
시야 끝에 쓰러진 엘피가 보인다.
박살날 것만 같은 의식을 유지할 수 있던 건 엘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 피.”
꽂힌 검을 뽑아내려고 몸에 힘을 넣는다.
하지만, 네 자루의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흘러나온 피는 미적지근하고 미끌거리고 있다.
“아직 다른 사람을 걱정할 수 있다니 놀랐어. 그렇게 저 창녀가 걱정이니?”
“……큭!”
“그럼, 얼른 그 검을 뽑으라고. 네가 일어난다면 엘피스자크는 놔 줘도 된다구?”
“……큭! ……크으윽!!”
“네, 타임 오버! 유감이지만, 엘피스자크를 괴롭히도록 할게에!!”
쓰러져 있는 엘피한테 디오니스가 물을 날렸다.
쏘아진 물이 엘피를 방의 벽에 처박는다.
다음 순간,
“네, 오른소오온!!”
공중에 떠 있던 엘피의 오른손에, 검이 꽂혔다.
손바닥과 벽을 관통해 검이 엘피를 꿰메 붙인다.
“자, 계속해서 간다!? 오른바알!”
“……큭.”
“왜 그래, 아마츠으! 사랑하는 엘피스자크가 괴로워 하고 있다고! 힘 내야지!”
“이……자시이이익!!”
살점이 찢어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검을 뽑으려고 온몸에 힘을 넣었다.
이를 악물고, 소리치고, 마력으로 몸을 강화해 봐도 검은 움직이지 않는다.
“엘피스자크. 아마츠는 너를 구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박정한 녀석이네. 네가 쓸데없이 목숨을 걸고 감싸줬는데 말이야! 그럼, 다음은 왼발!”
“커……억!”
“자, 왼손!! 아하하하! 전 마왕의 표본이 완성됐네!”
엘피의 사지가 벽에 꿰여있다.
분신체가 아닌 팔에서는 뚝뚝 하고 엄청난 양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만……둬.”
“멈추게 하고 싶으면 그 검을 뽑으면 되잖아! 왜 안 뽑는 거야아?”
“……큭!”
“네, 그럼 계속 할게.”
검이 생성되고, 엘피의 온몸을 꿰어버린다.
엘피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신음소리를 낼 뿐이다.
“그저 검을 꽂는 것만으로는 여흥이 없네.”
디오니스의 주변에 나이프 정도 되는 작은 검이 나타났다.
그게 발사되더니, 엘피의 복부에 꽂혔다.
“네, 콰앙!”
“커……억!”
꽂힌 나이프가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엘피의 복부가 튕겨 날아간다.
복부는 분신체지만, 통각은 있다.
배가 날아간 고통을 엘피가 맛보고 있다.
“아아아아아아악!!”
검이 뽑히질 않는다.
힘이 부족하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디오니스의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자, 폭발한다!? 콰앙!”
“………큭.”
“네가! 내가 하는 말을! 안 듣는 게! 나쁜 거라고오!!”
검이 폭발한다.
엘피의 뺨을 칼날이 찢는다.
분신체가 아닌 양팔을 조그만 검으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디오니스는 집요하게 꽂아간다.
“결국 말이야, 아마츠. 너는 『영웅』으로써의 빌린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야.”
부정하려고 발버둥치지만, 검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너는 노력한 것도, 특별한 짓을 한 것도 아니야. 그저 우연히 용사로써 소환되고, 반칙급 힘을 얻었을 뿐. 그건 네 힘이고 뭐고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게 없으면 너는 그냥 송사리로 격이 떨어져.”
검이 엘피를 상처입힌다.
“걸작이란 말이지. 다른 사람한테서 받은 힘으로 폼 부리고 말이야. 그게 없으면 이렇게 비참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검은 뽑히지 않는다.
“너, 전에 말했지. 나는 휩쓸리기만 한 인생을 보내왔으니까, 이 세계에서 그런 자기를 바꾸고 싶다고 말이야. 바아아아아아보 아냐? 너는 아무것도 안 바뀌었어. 과정 중에 받은 빌린 힘에 취해서 그저 휘둘리고 있을 뿐이라고.”
엘피가 또 검으로 상처를 입는다.
분신체를 유지시키지 못하고 노이즈가 생겨나고 있었다.
용서없이, 검은 엘피를 도려낸다.
그걸 나는 그저 땅에 붙어 있는 채로 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전쟁을 끝내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고 싶어』라는 꿈도 루시피나가 말했던 거에 영향을 받았을 뿐이잖아? 너 자신은 그런 거창한 건 생각하지 않은 거야.”
반론할 수 없었다.
이미 자각하고 있다.
나는 그저 존경하는 루시피나의 말에 동경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너는 그냥 ‘나는 선택받은 『용사』’ 라면서 도취하고 싼티 나는 위선을 내걸고 있던 것뿐이라고. 그래서 우리들한테 배신당했어. 너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세계를 구해? 평화아? 야, 한 번 더 말해 봐! 네 꿈은 뭐지이?”
그게 올바르다고 생각했으니까.
휩쓸리기만 했던 나라도 뭔가를 이루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디오니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린다.
“……말 못 하겠지! 아하하하하하하하!! 자신의 비참함을, 자신의 왜소함을 깨달은 너한테는! 그런 분수 안 맞는 말은 못 하겠지이!!”
“………….”
“계속! 네 그 어설프고 어설픈 구역질 나오는 사고방식이 싫었어!! 자기 힘도 아닌데, 자기가 얻은 이상도 아닌데!! 자기 것처럼 그걸 내걸고, 그걸로 세계를 구하다니 건방진 것도 정도가 있다고!!”
“………….”
“너는 말했지? 동료인 나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그 말투가 짜증난단 말이지. 마치 내가 너한테 뒤지는 것 같은 말투 쓰고 말이야……!”
그러니까, 라며.
“나는 네 모든 걸 짓밟았어. 그대로 비참하게 땅을 기어다니면서 엘피스자크가 능욕당하는 걸 보고 있으면 되는 거야. 옷을 벗기고, 알몸을 보여주고, 네 앞에서 범해 줄게. 사랑하는 엘피가 그런 꼴에 처하는 거야, 괴롭지, 분하지? 하지만 유감! 아무런 힘도 없는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답니다아!!”
……맞아.
나한테는 아무런 힘도 없어.
엘피를 구할 힘도, 이제.
“그리고 나서, 잔뜩 괴롭힌 뒤에 죽여 줄게. 이게 네, 휩쓸리기만 했던 인생의 결말이야.”
디오니스가 말한 대로였다.
힘도 이상도, 다른 사람한테서 빌린 가짜다.
휩쓸리기만 했을 뿐, 내가 얻은 게 아니다.
“아……아아.”
몸에서 힘이 빠져간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건가.
아니, 아니다.
디오니스의 말에, 마음이 부러져 있었다.
“나는 결국……휩쓸리고 있었을 뿐이고……!”
디오니스가 만면에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돌려줄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한다.
검을 뽑으려고 넣고 있던 힘을, 빼려고 했을 때였다.
“――정말로, 그런 거냐?”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건, 갓슈의 서고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말.
“너는 정말로……휩쓸리고 있었던 것뿐인 것이냐?”
“……닥쳐.”
입을 연 엘피한테 검이 꽂힌다.
커헉……하고 살짝 숨을 내뱉으면서.
그래도 엘피는 말을 이었다.
“30년 전……네가 싸우고 있던 건, 정말로 휩쓸리고 있었던 것뿐인 것이냐?”
“닥치라니까!”
검이 엘피를 상처 입힌다.
하지만, 엘피는 멈추지 않는다.
“그때――연옥 미궁에서 너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흙의 마장과 싸웠던 때를 말하는 거겠지.
나는 한 번 엘피를 버리고 도망치려 한 것이다.
“그때 도망쳤다면, 너 혼자는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짜증이 난 디오니스의 공격이 엘피를 덮친다.
“네가 정말로……! 휩쓸리고 있던 것뿐이라면, 나를 내버리고 있던 게 아닌 건가……!”
그건――――.
“네가 몇 년이나 마왕군과 싸웠던 걸, 나는 알고 있다……!”
“――――”
“휩쓸린, 것만으로! 계속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
엘피의 머리를 칼날이 스친다.
피가 뿜어져 나오고, 엘피의 얼굴에 떨어진다.
“닥치라고 했잖아!?”
잡음을 무시하고, 엘피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나한테 물었다.
“――정말로, 너는 휩쓸리고 있던 것뿐인 것이냐?”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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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하고 싶었어.”
『용사』만 살아남는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그렇게 말하며 나를 감싸고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감싸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같이 싸운 동료가 상처 입는 걸 몇 번이나 봤다.
생각했다.
같이 싸워온 동료를.
상처 입고, 괴로워하는 동료를.
류자스를, 디오니스를, 루시피나를, 구하고 싶다고.
계기는, 고작 그 정도의 일이었다.
그 뒤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봤다.
인간, 아인, 마족.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전쟁에서 다치는 걸 봐 왔다.
세계를 구한다느니, 평화롭게 만든다느니, 전쟁을 끝낸다느니.
사실은 모든 사람을 구하고 싶다니, 그런 거창한 마음은 없었지만.
그 모든 이상은 전부 나중에 빌린 것들이지만.
――엄청난 숫자의 우는 얼굴을 봐 왔다.
상처 입고, 죽고, 소중한 사람을 잃고, 한탄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우는 얼굴을.
그걸 보고, 생각했다.
그 우는 얼굴을 미소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세계 평화 따위……확실히 나중에 얻은 이상이었어. 하지만, 눈앞에서 슬퍼하는 사람을 보고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진짜라고.”
“아직도, 그런 물러터진 말을 하는 거야? 정말로, 글러먹었네.”
눈앞에서 다치는 동료를.
눈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미소를 짓게 하기 위해서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영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좀 슬슬 깨달아라, 아마츠. 그 얄팍한 위선도 정에 얽매여 있었을 뿐인 시시한 쓰레기라고.”
이미, 잡음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힘은 빌린 것.
이상은 나중에 얻은 것.
지금은 둘 다 잃고 영웅 같은 건 시시하다고 웃어버렸지만.
빌린 게 아니고, 나중에 얻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한테 휩쓸리는 일 없이.
그때 나는, 분명히.
“――영웅이 되겠다고, 내가 결심했어.”
철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사지를 땅에 붙여두고 있던 검이, 정신을 차려보니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자유롭게 된 손발을 들어올렸다.
“뭐……내, 검이.”
경악하는 디오니스를 향해 움직이려 하다가 쓰러질 뻔 했다.
후들후들 하고 다리가 떨리고 있다.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
이미, 마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죽다 만 주제에 사람 놀래키고 말이야. 좋아. 그럼, 지금 눈앞에서 저 여자를 죽여 주마!!”
『괴 인 장 전(壊刃装填)』으로 인해 엄청난 숫자의 검이 만들어졌다.
그때까지 했던 장난과는 달리, 진심의 마력이 담긴 검의 폭풍.
그게 엘피한테 발사된다.
포기한 듯이 엘피가 눈을 감는 게 보였다.
지금 나로서는 어찌할 방도도 없다.
웃기지 마, 하고 몸에 힘을 넣는다.
엘피를 죽게 놔 둘 수는 없다.
저 녀석이, 죽지 않았으면 한다고.
――구하고 싶다.
“――――”
시야에 노이즈가 내달렸다.
세계가 잿빛으로 물들고, 보이는 사물의 움직임이 완만한 것으로 바뀌어 간다.
엘피한테 쏘아진 검이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 찰나, 잿빛의 시야에 남자의 등이 떠올랐다.
그걸 보고 나는 무심코 중얼거리고 말았다.
“아아……그런가.”
두 번째 소환을 당하고 나서 몇 번인가 봤던 그 등.
그저 앞만을 바라보고 있는 잿빛의 청년.
그건 제일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있던 존재.
그저 막연한 분노에 휩싸여 나하고 마주보는 걸 피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한 거겠지.
하지만, 지금.
그 남자의 정체를 나는 겨우 깨달았다.
――영웅 아마츠.
저건, 옛날에 살아있었을 적의 나다.
시시한 이상을 내걸고, 빌린 힘을 휘두르고.
그러면서도 올곧게, 누군가를 구하려고 했던 내 힘이다.
―나(아마츠)의 등에 손을 뻗는다.
힘은 잃었다.
이상도 잃었다.
그래도, 나는 엘피를 구하고 싶다.
“그러니까――”
재현해라.
과거의, 나의 힘을.
완벽하게, 1밀리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하면, 내 힘은 저 녀석한테 통한다.
엘피를 구할 수 있으니까.
용사의 증표가, 불타는 듯한 빛을 발한다.
가슴 안의 뜨거운 충동이 형태를 이뤄간다.
마력이 이끄는 대로 나는 그 심상(말)을 입에 담았다.
“――『영웅 재현(더・레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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