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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용사의 복수담~실망했습니다, 용사 그만두고 전 마왕하고 파티 짜겠습니다.'의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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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죽음의 늪』
제 17화 『――나는 절대로』
지옥 같은 진홍빛이 시야를 감싼다.
굉음이 미궁을 뒤흔들고 열풍이 거세게 몰아친다.
폭발이 잠잠해진 뒤, 연기와 함께 탄내가 방에 가득 찼다.
“……어떻게든, 잘 했나.”
폭발 중심지에서 떨어진 곳에서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작전 결과를 중얼거렸다.
디오니스하고 방심과 과신을 이용한 계략――상당한 부담을 떠맏게 되었지만, 무사히 성공했다.
“……큭.”
무리한 신체 강화로 인해 뼈가 부러진 오른팔에 얼굴을 찌푸리고 포션을 삼켰다.
마시고 몇 초의 간격을 두고, 오른팔이나 전투 중에 아팠던 온몸의 근육통이 조금씩 완화된다.
“괜찮나, 이오리.”
디오니스를 마안으로 날려버려서 물로 만든 커다란 뱀은 사라져 있었다.
막는 게 사라져서 엘피가 터벅터벅 나한테 달려왔다.
“그래. 어떻게든 말이지.”
미궁에 들어오기 전에 디오니스를 쓰러트리기 위한 계책은 상각해 놨다.
엘피가 『큰 소리로 마안의 발동을 선언』, 그 틈을 타서 내가 디오니스한테 데미지를 주르고, 엘피의 마안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엘피의 선언에 약간 일부러 같은 기미가 섞여 있었지만, 디오니스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강화 마술의 중첩 사용……상당한 부담이 걸렸던 것 같구나.”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더니, 동시에 뼈가 박살났어. 포션을 마셨으니까 금방 치료될 테지만 말이야.”
그 상황에서 무리를 했다면 역시 죽겠지.
『삼중가속』에다가 또 한 번 중첩할 수는 있지만, 절대 하지 않기로 하자.
“……처리한 건가?”
연기를 가리키며 엘피한테 물어봤다.
그걸 보고 엘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귀신족의 생명력이라면 치명상 정도일 테지. 손발 몇 개는 날아갔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 안심했어.”
그 폭발로 죽어버려선 내 울분이 풀리지 않으니 말이다.
바로 죽어버리지 않도록 포션으로 살짝 회복시켜서 천천히 복수하도록 할까.
포션 덕분에 몸의 데미지가 치유되어 가는 게 느껴진다.
최상위 포션을 모아둬서 다행이었군.
“자 그럼.”
마침 전방의 연기도 잦아 들어지고 있다.
디오니스가 얼마나 데미지를 입었는지 확인해 볼까.
카렌을 위해서 『요석』도 회수해 두자.
팔의 뼈가 회복된 걸 확인하고 일어선 순간이었다.
“이오――――큭!”
연기 쪽으로 시선을 돌린 엘피가 안색을 바꾸며 뭔가를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입을 연 직후, 바로 옆에 있던 엘피의 모습이 사라졌다.
“엘피!?”
아니, 아니다.
그때까지 서 있던 장소보다 조금 뒤쪽.
무릎을 꿇은 엘피의 복부에 여러 개의 검이 꽂혀 있었다.
“뭐가……!”
공격당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뒤로 물러나려고 한 순간.
“……윽!?”
연기 속에서 날아온 검이 내 왼발 살점을 완전히 도려냈다.
균형을 잃고 땅으로 쓰러졌다.
“컥…….”
맨 처음에 찾아온 건 열이다.
뜨겁다.
불로 지지는 것과는 또 다른 뜨거움.
“크……으윽!”
쩍 하고 벌어진 상처를 눈으로 본 순간, 열이 격통으로 바뀌었다.
도려내진 살점 사이에서 체내에 있는 신경이나 뼈가 엿보이고 있다.
너무나 엄청난 격통에 시야가 몇 번이나 하얗게 깜빡거린다.
빠져버릴 정도로 이를 악물고, 가지고 있는 포션으로 손을 뻗으려 하다가――
“하……크어어억……!?”
휘잉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
이어서, 가방으로 손을 뻗은 오른손이 날아든 검 때문에 땅에 박혀 있었다.
손등을 칼날이 관통하고 있는 게 보인다.
손에 꽂힌 검이, 한 순간 빛나는가 싶더니, 형체도 없이 소멸했다.
남은 건 구멍이 뚫린 오른손뿐이다.
“뭐……야, 이건!”
“……나라는 사람이 잊어버리고 있었어. 잔재주를 부리는 건 허접쓰레기의 전매특허라는 걸 말이야.”
연기에 디오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
엘피의 마안은 직격했을 터다.
그런데, 그 몸에는 폭발로 인한 데미지가 전혀 없었다.
내가 베어낸 상처도 이미 아물어 있다.
말도 안 돼.
그걸 맞고 아무렇지 않다니, 그럴 수가…….
“……이걸 갖고 있어서 다행이었어.”
내 의문에 대답하듯이 디오니스가 품에서 꺼내든 건, 한 장의 부적이었다.
다음 순간, 그 부적이 검게 불타오르더니, 후득후득하고 재로 바뀌어 간다.
“『보호의 부적』. 기억하고 있으려나? 마왕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너한테 건네주려고 했던 마력 부여품이야. 만약을 위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두고 있어서 다행이다.”
“장비품이 도착하지 못했던 건……역시 네놈들이 꾸민 짓이었냐……!”
“네가 미움 받던 사람인 게 나쁜 거야. 네 인망이 없던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
디오니스가 손을 휘두른다.
그 직후, 갑자기 그 등 뒤에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그게 저절로 나를 향해 총탄처럼 쏘아졌다.
“……큭.”
사용할 수 있는 왼손과 오른손으로 몸을 움직여 회피 동작을 취한다.
피하지 못하고 오른쪽 어깨를 칼날이 베어버린다.
“하……크윽!”
칼날에 어깨가 베인 격통에 술에 취한 것처럼 시야가 일그러진다.
저 녀석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네 잔머리에는 딱히 할 말은 없지만……응, 엘피스자크. 너는 좋네.”
디오니스의 시선이 엘피한테 향해졌다.
복부를 몇 개의 칼날이 관통했을 터인 엘피였지만, 어느새 검이 사라져 있었다.
관통된 게 분신체였던 덕분에 그렇게 큰 데미지는 입지 않은 듯하다.
“그 마안, 멋진 위력이야. 전성기의 너한테는 한없이 뒤지지만……그래도 요 30년 간 손을 안 건드렸던 보험을 나한테 쓰게 만들었어. 놀랐다고. 미안해, 너를 깔보고 있었어.”
“……닥쳐라.”
“――그러니까, 너한테는 내 전력을 보여 줄게.”
디오니스가 뿜어내던 분위기가 변한다.
밖과 막혀 있을 터인 방에 바람이 불고 있다.
“먼저, 첫 번째. 내가 귀신족 최강이라는 걸 증명하지.”
디오니스의 이마――앞머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뿔에 변화가 나타났다.
우득우득 하고 뭔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직후, 디오니스의 뿔이 나이프 도신 길이 정도로 뻗었다.
“――『귀신화』. 신체 능력과 마력량을 일시적으로 극한까지 올리는, 귀신족의 오의다. 먼 옛날, 귀신족이 아직 마왕군에 소속되어 있었을 적에 전해지고 있던 비술. 지금의 얼빠진 귀신족들은 누구 한 사람 사용하는 자가 없었지만――나는 이 경지에 도달했다!!”
디오니스한테서 흘러나오고 있던 마력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가늘었던 몸이 한층 커진 게 보인다.
“……옛 사천왕 『금강(金剛)』이 사용했다고 하는 비술인가.”
짐작가는 부분이 있는 건지, 엘피가 험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안 끝났어.”
디오니스는 엘피한테서 시선을 떼고 나를 봤다.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 올리고 디오니스는 밉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계속 맘에 안 들었단 말이지. 그 파티에서, 나 혼자만 마술의 극치에 도달하지 못했던 게 말이야.”
“……뭐라고?”
“너한테는 『용사의 증표』를 이용한 고유 마술이 있었어. 류자스는 『상실 마술(로스트 매직)』을 쓸 수 있었어. 루시피나는 『심상 마술』사용자였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건, 나뿐이야.”
하지만 그건 30년 전의 얘기라고 디오니스는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많은 인간을 실험체로 삼아,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어레인지를 더해서!! ……나는 도달했어. 마술의 극치 너머로 말이야.”
디오니스의 주변에 마력이 모여든다.
그리고, 자랑하듯이 디오니스는 그 마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상실 마술・괴 인 장 전(壊刃装填, 로스트 매직 브레이크 트리거)』――.”
그 순간.
30을 넘는 숫자의 검이 디오니스 주변에 나타났다.
가까이서 본 걸로 갑자기 나타난 검의 정체를 겨우 깨달았다.
검을 어딘가에 숨기고 있던 게 아니다.
디오니스는 자기 마술로, 순식간에 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상실 마술……이라고?”
상실 마술.
심상 마술과 버금가는 마술의 도달점으로 치부되는 대마술.
많은 마술사들이 지향하는 마술의 극치.
그걸 익힌 디오니스가 소리친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너희들을 능가한다!!”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검들이 나를 향했다.
디오니스가 팔을 내리치는 것과 동시에 모든 검들이 탄환처럼 발사되었다.
“……큭!”
“――너는 상처를 치료해라!!”
엄청난 숫자의 도신이 번뜩인 직후.
소리치는 것과 함께 엘피가 내 앞으로 뛰쳐들었다.
“――『마완・괴열단』”
마력의 손톱을 사용해 엘피가 검의 태풍을 향해 부딪친다.
엘피의 팔이 휘둘러질 때마다 여러 개의 검이 튕겨나가고, 마력의 입자가 되어 사라진다.
그 맹공에 검 한 자루조차 나한테 닿지 않는다.
“흥. 수탄(水弾)을 연발하는 것과 아무것도 다를 게 없군.”
“……그러려나?”
새롭게 검을 추가로 만들어내 디오니스가 발사했다.
검의 태풍 너머에 있는 디오니스의 악의로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나는 이해했다.
――저건 위험하다.
“피해, 엘피이이이이이!!”
“!?”
“느리다고, 굼벵이!!”
날아든 엄청난 숫자의 검.
그걸 엘피가 손톱으로 튕겨내기 직전이었다.
그 모든 게 일제히 불길한 빛을 뿜어낸다.
“――『파괴 마술』”
유열이 담긴, 디오니스의 영창이 귀에 닿았다.
직후.
모든 검이 폭발하더니,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
“엘……피……!”
폭풍에 떠밀려 지면을 구르면서, 나는 뭐가 일어났는지 이해했다.
디오니스가 만들고 있는 저 검.
그 모든 게 마력 부여품이다.
내부에 마력을 내포한 검――그러니 당연히, 『파괴 마술』을 이용해서 폭발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력만 가지고 마력 부여품을 만들어 내다니, 규격 외에도 정도가 있다.
검 자체는 마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몇 초만에 사라지지만, 그래도 『파괴 마술』의 위력을 생각하면 너무나 충분할 정도로 흉악하다.
“으……큭.”
시야 끝에서 온몸에 커다란 화상을 입은 엘피의 모습이 보였다.
무릎을 꿇고,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지금 걸로도 죽지 않다니, 역시 전 마왕! ……그에 비해, 전 용사는 비참하기 그지없네.”
“이……자식.”
거의 멀쩡한 디오니스가 나를 가리키면서 비웃는다.
“아하, 아마츠. 아직 싸울 생각이니?”
“당연……하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도 중요한데, 때로는 현실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구우?”
말할 필요도 없이, 상황은 최악이었다.
나는 아직 검으로 도려내진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
엘피도 폭발을 제대로 받고 상당한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지.
일단 뭘 하려고 해도 손발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면 움직일 수 없다.
디오니스가 그걸 기다려 줄까?
……말도 안 된다.
무사한 쪽 손으로 『마 훼 봉 살(이르 아타락시아)』를 전개하면.
……무리다.
상실 마술을 막아낼 정도의 강도는 없다.
그럼 엘피한테…….
아니, 불가능하다.
저 폭발을 제대로 받고 엘피는 움직일 수 없다.
“……큭.”
“이해했니, 아마츠. 너희들의 패배야.”
“디오니스으……!”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지속 포션의 효과로 조금씩 상처가 낫고 있다.
이 효력으로 적어도 발이 나을 때까지, 시간을 벌면……!
“아마츠으으! 좋은 제안이 있는데, 들어 볼래?”
“……뭐지?”
“땅을 기어 다니면서, 눈을 치켜뜨고 땅을 핥으면서 『저는 영웅의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빌린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병신입니다』라고 사죄하면, 목숨만은 살려 줄 수도 있는데?”
“웃기지……!”
아니……기다려.
이건, 찬스다.
저 녀석을 만족시키고, 그 사이에 상처를 치료하면――
“거짓말~.”
“크……아악!?”
순간, 오른발에 검이 꽂혔다.
그 충격으로 피를 흩뿌리면서 지면을 굴렀다.
“아하하하하하!”
나를 가리키고 배를 붙잡으면서 디오니스가 큰 소리로 웃는다.
“――살려줄 리가 없잖아!? 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믿어버리는 거야? 나는 이해 못 하겠는걸.”
“……큭.”
“너한테 살 가치 따윈 없어. 하지만…….”
너는 아니야, 라고 디오니스가 엘피한테 시선을 보냈다.
“――전 마왕인 너라면 달라.”
“……무, 슨 소릴.”
“내가 너를 마왕으로 만들어 주지. 아마츠를 버리고, 나하고 손을 잡는 거야.”
그 제안에, 엘피가 노성을 내질렀다.
“웃기지……마라!”
“나는 압도적인 힘을 손에 넣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해서 말이야. 이 전투에서 이해했어. 너라면, 나하고 손을 잡기에 충분해.”
“누가……네놈 따위하고……!”
“아아니, 잡을 거야. 너는 말이지.”
이거야 원, 하고 말을 못 알아듣는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 뒤.
엘피의 가슴에, 검이 꽂혔다.
“커……흡!”
“나하고 아마츠. 누구하고 손을 잡는 게 유리한지, 너한테 알려 줄게.”
쓰러진 엘피한테 디오니스가 다가간다.
그 다음부터 디오니스가 취한 행동은.
싸움조차 되지 않는,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
“너는 오르테기아한테 복수하고 싶은 거잖아? 실은 나도 오르테기아를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맨 처음에 엘피의 두 눈이 일직선으로 베였다.
마안을 봉인당하자, 엘피가 신음한다.
“약한 주제에 잘난 척 하고 말이야. 맘에 안 든단 말이지.”
그 뒤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디오니스는 엘피의 몸을 검으로 베어냈다.
“마왕군 녀석들도 뒤에서 나를 『귀신족 따위가』라면서 비웃고 있어. 그건 용서 못 하겠거든. 그래서 마왕을 죽이고 내 힘을 보여 주겠어.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하지만 딱히 마왕이 되고 싶은 건 아니거든. 귀찮고 말이야.”
작은 나이프 정도의 검이 엘피의 배를 휘젓는다.
“그러니까 협력해 준다면, 마왕의 자리는 너한테 양보하지. 엘피스자크. 엘피스자크・반・기르데갈드.”
반.
그건, 마왕한테만 부여되는 칭호다.
서걱서걱 검으로 엘피를 도려내면서 디오니스가 계속해서 속삭인다.
내 동료가 되라고.
“나하고 손을 잡아준다면 너한테 입힌 상처는 바로 치료해 주지. 내가 죽인 네 부하에 대해서도 사죄하겠어. 그것 말고도, 네 부하랑 관련이 있는 정보를 갖고 있거든, 그걸 가르쳐 줘도 돼.”
웃기고 앉았다.
하지만 엘피를 구하려고 해도, 내가 움직이려 해도, 곧바로 검이 날아든다.
치명상을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지금은 상처를 치료할 수밖에…….
“굉장한데. 베어냈던 눈알이 벌써 낫고 있어. 이게 최상위 마족의 힘인 거구나. 죽여도 되살아난다는 것도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야.”
그렇게 말하며 디오니스는 다시 엘피의 두 눈을 베어냈다.
“……큭.”
엘피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신음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요 30년 간, 노예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웠어. 아무리 강한 의사가 있어라도, 고통에는 못 이겨. 죽음의 공포에는 저항하지 못 해. 누구나 다 자기 몸이 가장 중요한 법이야.”
엘피를 괴롭히면서도 한쪽으로 상냥하게 디오니스가 속삭인다.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어. 누구나 다 그렇다고. 아마츠를 배신해도, 아무도 너를 책망하거나 하지 않아.”
“………….”
“아픈 건 싫어. 누구나 다 그건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응?”
“………….”
“여기서 나한테 계속해서 괴롭힘 당하는 거랑, 나한테 붙어서 다시 마왕의 자리에 앉는 것. 너라면 어떤 게 유리한 선택인지 알 수 있을 거야. 엘피스자크 반 기르데갈드. 다시 한 번 이 이름을 대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나랑 손을 잡자.
몇 번이나, 디오니스가 엘피한테 그렇게 속삭였을까.
양 눈이 도려내어지고, 전신에 검이 꽂히고, 내장이 칼날로 휘저어지고.
이윽고 엘피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응?”
“정말로……나를 마왕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냐?”
가냘픈 목소리로 엘피가 그렇게 말하는 게 들렸다.
“――――”
내 사고가 멎었다.
“물론이고말고. 네 손으로 저기 굴러다니는 아마츠를 죽여 준다면, 내 동료라고 인정하겠어.”
엘피가 해방되었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엘피가 나한테 시선을 돌렸다.
베였던 눈동자가 거의 나아있다.
“……엘, 피.”
“――――”
“엘피……!”
엘피를 부른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아하하하하하! 우리들한테 막 배신당한 참인데 말이야, 거의 진보가 없네! 30년 지나도 아직 이해 못 했다니 말이야! 왜 이해 못 하는 거야!? 너 같은 쓰레기는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질 뿐이라는 걸 말이야!!”
“……아…….”
엘피가 일어선다.
나를 보고 있다.
눈을 진홍빛으로 물들이고 마안을 발동해서.
살해당한다.
“……………큭.”
리스크는 용인하고 있었다.
이렇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하지만……엘피는 살게 되는, 건가?
저 녀석의 말투로 봐서 엘피를 이용하는 게 진짜라고 친다면.
저 녀석이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말도 안 돼.
가령 이곳은 살아남는다고 해도, 저 녀석한테 기다리고 있는 건 이용당하다 살해당하는 미래뿐이다.
젠장,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이딴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
아직 복수를 다 끝내지 못했다.
나는.
나는, 또 배신당하고 죽는 건가.
“복수자끼리 라면서 어울리는 것 자체가 애초에 이상한 거야, 아마츠. 너는 상처를 핥아줄 상대를 원했던 거지? 그래서, 또오 믿어버리고 만 거지? 유감! 그 결과, 너는 또 배신당하게 됐답니다!”
비웃음 소리가 들린다.
“이오리.”
“――――”
“나는 이런 곳에서 끝날 수는 없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료를 배신할 정도라면, 죽는 편이 낫다.”
“뭐……?”
빙글 하고 엘피가 기세 좋게 뒤를 돌아봤다.
그 시선 끝에는 얼빠진 표정의 디오니스가 있다.
진홍빛 섬광이 디오니스를 날려버렸다.
아연실색하는 나한테 엘피가 다가왔다.
“심각한 얼굴이구나, 이오리.”
“……엘피.”
“말했지 않느냐?”
상냥한 목소리였다.
어렴풋이 미소 지으며 엘피가 말했다.
“――나는 절대로 너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아.”
떠올렸다.
연옥 미궁에서 나눴던 엘피와의 대화.
――네가 내 동료로 있는 한, 나는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
“웃기고……앉았어! 엘피스자크! 내가 내민 손에 침을 뱉었구나아!!”
떠밀려 날아간 디오니스의 성난 외침소리가 울려 퍼진다.
“죽이겠어……! 죽여주마!!”
디오니스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얼마나 저 녀석이 놀고 있었다는 게 느껴질 정도의 마력량.
우리들의 만전의 상태였다 하더라도, 저거한테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역시, 그 일격으로는 쓰러트리지 못했나.”
그런데도 엘피의 목소리는 묘하게 차분했다.
딱 한 번 나를 돌아보더니, 디오니스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그리고 살짝 한숨을 내쉬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도망쳐라, 이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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