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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제 4화 『서바이브 신전의 성녀』
랄고필리 왕국의 왕도, 레반티스.
그 왕도 중앙에는 왕국과 그 가문이 살고 있는 궁정이 있고, 그걸 감싸는 것처럼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의 수는 약 4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랄고필리 왕국 안에서는 면적 인구와 함께 틀림없이 제일 큰 도시이다.
그런 레반티스 건물들 사이에 서바이브 교단의 신전이 우뚝 솟아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신봉하는 사람이 많은 사주의 신, 사대(四大)신.
각자 신의 이름은 풍요의 신 서바이브, 태양신 골라이바, 달의 신 그래버비, 해양신 달가베 까지, 랄고필리 왕국이 존재하는 조이살라이트 대륙에서는 어딜 가도 이 사주신 중 어느 한 신의 신전이나 예배당은 분명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풍요신 서바이브는 가장 신자가 많은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풍요를 관장하는 이 신의 주 신봉자는 농민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직종이 농민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다.
또한, 풍요를 관장하는 것과 함께 순산 같은 출산의 신으로도 추앙받고 있어서 동시에 결혼의 수호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세계에서는 서바이브 신 앞에서 결혼을 맹세하는 게 일반적이며, 그건 왕후, 귀족부터 농민까지 거의 예외 없이 결혼식은 서바이브 신전이나 예배당에서 치러지고, 그의 신관이 주례를 본다.
그 때문인지 왕도에 존재하는 사대신의 신전들 중에서는 가장 크고 장엄한 건물이었다.
매일 수많은 신봉자가 방문해 서바이브 신께 기도를 올리고 간다. 때문에, 밤낮 상관없이 신전의 출입구는 열려 있어서, 신전의 정문 양 옆에는 신전을 수호하는 완전 무장을 한 신관 기사가 항상 눈에 불을 비추고 있다.
그러한 서바이브 신전의 복도를 칼세드니아가 서두른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서바이브 신전의 지하. 왕도 주변에서는 가장 마력 농도가 높은, 말하자면「성지」로 알려져 있는 장소이자, 신전에서도 특별한 예배나 의식 때에만 사용되는 장소이다.
칼세드니아가 타츠미를 소환하는 장소로서 그 지하를 고른 것도 주변에 충만한 짙은 마력의 도움을 빌리기 위해서다.
지하실을 뛰쳐나온 칼세드니아는 일단 신전에서 생활하고 있는 신관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숙소 안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소환 의식을 위해 신성한 때를 위해 고른 독특한 의식복에서, 평소에 입고 다니는 신관복으로 입을 갈아입기 위해서다.
자기 방으로 뛰쳐들어온 칼세드니아는 재빨리 신관복으로 옷을 다 갈아입었다.
그리고 방에 놓여 있는 살짝 커다란 거울로 머리카락이나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지 않은지를 점검한다.
이 거울은 유리를 사용한 고급품이다. 유리하고 도자기 제조는 화염에 익숙한 일부 아인한테만 전해지는 기술이기 때문에 유리 제품이나 도자기 제품은 그만큼 비싼 것이다.
옷매무새가 잘 정돈된 걸 확인한 칼세드니아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에 서바이브 신의 성인(聖印)을 긋고, 서둘러 자기 방을 뛰쳐나가――려다가, 우뚝 하고 멈춰섰다.
그녀가 소환한 타츠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가 자신의 조부이자 서바이브 신전의 최고 사제와 함께 있다는 건 틀림없다. 그렇다면, 누구한테 물어보면 조부가 있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칼세드니아는 어느 정도 신분이 높은 인물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급 신관 같은 사람한테 최고 사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적을테지만, 지위가 높은 고위 사제 정도 된다면 최고 사제가 어디 있는지는 항상 파악하고 있을 터다.
그리고, 이 신전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녀와 지인이다.
아니, 사실은 그 반대다. <<성녀>>라는 이명을 가진 칼세드니아를 모르는 사람 따위 이 신전에는 한 사람도 없다. 그 뿐이 아니라 레반티스 도시의 주민이라면 절반 이상이 그녀의 얼굴을 알고 있을 것이다.
보기드문 마술의 소질과 평범한 사람을 아득히 뛰어넘는 내포 마력. 그리고 뛰어난 <성(聖)> 계통, 특히 치유계와 정화계의 마법에 뛰어난 사용자이자, 빼어난 그 미모 덕분에 칼세드니아는 언제부턴가 <<성녀>>라고 불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 칼세드니아가 복도를 걸어다니면 그녀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전부 뒤를 돌아본다.
지금도 우연히 복도를 걷고 있던 두 사람의 하위 신관이 앞에서 걸어다니던 그녀한테 길을 터주면서 고개를 가볍게 숙이면서도, 스쳐지나가는 그녀한테 동경의 감정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아아……칼세드니아 님은 언제나 정말 아름다우셔…….”
“그건 나도 무척 동감이야……근데, 오늘 칼세드니아 님, 묘하게 기뻐하는 것 같지 않으셨어?”
“아,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응, 나도 그렇게 느꼈어. 묘하게 들떠보이는 것 같았고.”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걸까? 하지만…….”
“응? 왜 그러는데?”
“저 칼세드니아 님이 저렇게까지 들뜬 모습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으시다니……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서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급 신관들.
그들이 그렇게 느낄 정도로 오늘 칼세드니아의 발걸음은 튕기듯이 가벼웠다.
한 고위 사제와 만날 수 있었던 칼세드니아는 그한테서 조부가 있는 곳을 물었다.
그 고위 사제의 말에 따르면 조부는 지금 손님과 함게 응접실에 있다고 한다.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조부가 타츠미를 응접실로 데려갈 거라는 것 정도는 간단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칼세드니아가 그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던 건 역시 그 정도로 그녀가 붕 떠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철들 적부터 계속 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남성. 그 남성의 대한 일은 한시라도 잊어본 적이 없다.
타츠미한테도 말했던 것처럼, 그녀한테는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다. 왜 그런 게 남아있는지는 모르지만 전생의 기억이 있는 건 틀림없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전생하는 생물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때문에, 환생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설령 작은 새에서 인간으로 환생했다 하더라도.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있는 건 극히 드물 것이다. 적어도 칼세드니아는 자신 외에 전생의 기억을 가진 사람하고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녀한테 그런 건 어찌 되든 상관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그녀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전의 그하고 같이 지냈던 생활이 무척이나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그를 떠올려 낸 건 이미 몇 년 전이었을까? 그 뒤로 칼세드니아는 그하고 재회하는 걸 비원으로 삼아 왔다.
그 때문에 이미 몇 년도 전부터 소환 의식에 대해 연구해 왔다. 물론, 자신의 마법사로서의 실력을 높이는 노력을 게을리 했던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지금부터 타츠미하고 만나서 어째서 이 세계에 불러들인 건지 그 설명을 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 설명을 함으로써 자신은 그한테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를 일방적으로 이쪽 세계에 불러들인 것이다. 그건 즉, 아무 허가도 없이 그한테 지금까지의 생활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한테 미움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심코 발이 무거워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하고 재회할 수 있던 건 그녀한테 있어서 극상의 행복이었다.
당시――환생하기 전의 그녀는 무척 작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가 정말 좋았다.
그의 옆에서 바싹 달라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타츠미만 있어 준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함께 자라고, 함께 살고,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함께였다.
그의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실로 행복한 기분으로 걷고 있던 칼세드니아. 그런 그녀를 갑자기 멈춰 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오오, 이건 칼세드니아 님이로군요. 설마, 오늘 당신하고 만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습니다. 역시, 이건 혼인을 관장하는 서바이브 신의 인도일까요?”
그렇게 말하며 정중하게 허리를 굽힌 건 덩치 좋은 청년이었다.
분명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의 장남으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칼세드니아한테 구혼을 해 왔던 사람이다.
그가 칼세드니아의 근처까지 다가오더니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어 그 손등에 살짝 입을 맞췄다.
살짝 무례한 이 행위에 칼세드니아는 자기도 모르게 그 아름다운 눈썹을 찌푸렸지만, 정작 그 백작의 장남은 그걸 눈치 채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칼세드니아는 이 사람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어도 이름까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 그녀한테 구혼을 해 온 건 눈앞에 있는 이 남성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녀의 조부이자 서바이브 신전 최고 사제한테는 매일같이 그녀한테 오는 구혼 신청이 날아든다. 그 중에는 왕위 계승권을 가진 사람조차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구혼 신청을 쥬젯페는 전부 거절하고 있다. 물론, 쥬젯페가 칼세드니아의 내심을 알고 있으며, 그 마음을 귀중히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신전이라는 건 신에게 봉사하는 조직이지, 나라에 소속되어 있는 게 아니다. 때문에 왕권이라 할지라도 신전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때문에 형식상으로는 신관 같은 신에게 봉사하는 사람은 왕 앞에서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형식상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신관이라 할지라도 왕 앞에 나가면 무릎을 꿇는 게 관례다.
이번에 쥬젯페는 그 형식을 방패로 삼아 왕족이나 귀족한테서 들어오는 구혼을 전부 거절하고 있었다. 칼세드니아 자신도 사제의 신분을 가진 신관이기 때문에 상대가 왕후, 귀족이라 해도 강제로 혼인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칼세드니아는 계속해서 그녀를 극찬하고 있는 남성의 말을 적당히 흘려듣고 있었다.
그녀의 심정은 한시라도 빨리 타츠미의 곁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이것저것 얘기를 늘어트리면서 그녀의 발을 계속 멈추게 하고 있다.
맨 처음에는 그녀의 미모나 그 위업을 칭찬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 이야기는 자기 자랑으로 바뀌어 있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듣고 있어도 재밌지도 않은 별 거 아닌 얘기다.
이런 시시한 얘기를 듣고 있는 것보다 빨리 주인님의 곁으로 가고 싶은데!!! 마음속으로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그의 얘기에 맞장구를 친다.
그런 쓸데없는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슬슬 칼세드니아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그들 곁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칼세.”
친근하게 칼세드니아를 애칭으로 부르는 그 인물. 칼세드니아는 그 인물을 보고 얼굴을 환하게 빛냈고, 백작의 장남은 표정을 딱딱하게 경직시켰다.
“모르가.”
“이, 이건 <<자유 기사>>……아, 아니, 모르가나이크 공…….”
날씬한 몸에 잘 다부져진 근육, 용감해 보이면서도 매우 가지런한 미모를 가진 젊은 남성으로, 붉은 머리카락과 적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신광복이 아니라 판금제 갑옷을 걸치고 있었고,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있다. 그리고, 그 갑옷의 가슴 부근에는 서바이브 신의 성인이 새겨져 있었다.
성인이 새겨진 갑옷. 그건 신관 기사의 증표다.
신관 기사라는 건 신전과 그에 소속된 신관을 수호하는 기사를 가리킨다.
앞서 말했듯이, 신전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독자적 군사력을 가진다. 그게 신관 기사다.
애초에 이것도 또한 형식적인 것으로, 예를 들면 신전에 강도 같은 게 난입했을 경우 왕국은 신전의 허가를 받은 뒤 강도를 단속하거나 검사를 할 것이다.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지? 그리소프레즈 예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알겠어, 모르가.”
칼세드니아는 친근하게 모르가 라고 부른 남성한테 대답을 하고는, 다시 백작의 영애를 바라보았다.
“정말 죄송해요. 저희 조부께서……아니, 크리소프레즈 최고 사제님이 호출을 하셔서 이제 실례할게요.”
라며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는 그녀를 보고 백작의 장남도 이 이상 잡아두는 건 무리라고 깨달은 것 같다.
“아뇨아뇨, 크리소프레즈 예하께서 당신한테 용무가 있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나중에 또 만나 뵙도록 합지요.”
그 말을 남기고 모르가나이크한테도 인사를 한 뒤 겨우 떠나간 남성을 보고, 마음속으로 혀를 참녀서도 칼세드니아는 모르가나이크한테 말을 걸었다.
“고마워, 모르가. 덕분에 살았어. 정말로 저 사람 여러 가지로 끈질겨서…….”
“신경 쓰지 마. 그것보다 예하기 기다리고 있는 건 진짜다. 얼른 예하가 계신 곳으로 가는 편이 낫지 않나?”
“아! 큰일 났어! 나도 참, 주인님을 기다리게 해 버리다니――”
서두르는 기색으로 칼세드니아가 걸어나간다.
모르가나이크는 꽤 빠른 속도로 걸어 나가는 그녀의 등을 그저 멈춰 서서 어떤 마음이 담긴 시선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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